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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국민들 골탕 먹이는 게 부동산 대책?

“정책 목표가 무엇입니까? 이미 오른 집값을 유지하는 겁니까, 아니면 떨어트리는 것입니까?” - 이용호 무소속 의원

“급락을 원하는 건 아니고, 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적절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실수요자들이 집을 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게 정책 목표입니다.”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속시원하지 않은 원론적 답변이었지만 정답에 가까운 ‘현답’이라 생각했다. 1년 전 국회 국정감사에서 오간 이 문답이 문득 떠오른 것은, 최근 발표된 12·16 부동산 대책이 ‘시장 안정’이라는 목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대책 후 일주일, 시장 양상은 안정보다는 혼란에 가깝다. 관계당국의 소수 고위급 인사들만 정보를 공유해 설계하고 기습적으로 발표된 탓에 전혀 예측이 불가능했다. 대출·세제·분양가·공시가·청약 등 규제의 범위가 넓고 강도도 높아 충격이 컸는데, 일부 대책은 발표 다음날 즉시 적용돼 대비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워낙 많은 대책이 한번에 발표된 탓에 개개의 대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해석도 더 필요한 상황이다.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강화된 23일에도 일선 은행에서는 혼란이 계속됐다. 주택구입목적이 아닌 생활안정자금에도 적용되는지, 시세 9억원의 기준은 정확히 무엇인지, 대책 이전에 가계약만 맺어 놓은 것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려는 문의가 쇄도했다.

정부의 행보는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16일 대책을 발표할 때만 해도 15억원 초과 고가주택의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임차보증금 반환용 대출은 허용하겠다고 한 뒤, 갭투자 자금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다음날엔 다시 금지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15억원 초과 재건축·재개발의 이주비나 추가 분담금 대출 역시 처음엔 기존에 입주자 모집공고 신청을 낸 사업장에 대해서만 허용해주겠다고 했다가, 사업 지연 우려가 높아지자 기존에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곳까지 허용해주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정부가 예측불가능한 부동산 대책으로 시장에 혼란을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령 부동산 공시가격의 경우 발표는 ‘공정하게 바로잡겠다’고 해놓고는 고가 주택만 시세반영률을 높였다. 공시가격은 복지·행정·보상 등 60여개 행정항목의 정책수단으로 활용되는 기준이다. 정확하게 매기는 것이 중요한데, 집값을 잡는다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기준을 흔들어버린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공시가격을 만들겠다며 시작한 현실화작업이 되레 불신을 더 키우는 바람에 역대 어느때보다 많은 이의제기가 올해 접수됐다.

결국 불공정하게 공시가격을 매겼다는 이유로 감사원 감사까지 받는 상황이 됐음에도 내년에도도 고가주택 위주로 올리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세제나 청약제도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 들어 18차례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면서 수시로 제도가 변경되고 예외조항도 많이 생긴 탓에 전문가들도 그 내용을 명확하게 답하기 힘든 실정이다. 양도세나 종합부동산세는 보유 기간, 거주 기간, 공제율 등을 대입해야 겨우 산출 가능한 고차방정식이 됐다. 오죽하면 세무사가 잘못 안내해 세금을 잘못냈다가 항의를 받을까 두려워할 지경이 됐다는 불만이 현장에서는 나온다.

청약제도의 경우 정부 공식 해설집만 153페이지에 달할 정도다. 이번 대책으로 1순위 청약자격을 위한 거주 기한이 2년까지 늘어나게 되는데, 이 규제가 적용되는 지역은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다. 청약 제도가 난수표가 돼버린 탓에 매번 청약 부적격자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당국은 해당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리고 있다.

부동산 정책의 목표가 여전히 ‘시장 안정’이라면 이는 예측가능성을 높이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여론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 정부가 혹시 이번 대책으로 혼란에 빠진 시장의 모습을 보며 대책이 약발을 받는다고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총선 전에 충격 요법을 통해서라도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시장 안정이라는 원래의 목표를 잊은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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