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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 피싱 ‘행동책’에 이례적 무죄… “주범없는 수사관행” 지적도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법원이 이례적으로 보이스피싱 과정에서 돈을 송금하는 ‘행동책’ 역할을 담당했던 중국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최말단 행동책만을 검거해서는 보이스피싱 근절이 어렵다는 설명도 했다. 경찰과 검찰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수사 관행에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2단독 이형주 부장판사는 사기 방조 등 혐의로 기소된 중국인 A(24)씨와 B(22)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한국의 한 대학을 졸업한 A씨와 다른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B씨는 지난 6월 보이스피싱 조직 지시를 받고 사기 피해자에게서 2000만원씩을 수금해 송금한 혐의 등을 받는다. 두 사람은 재판 과정에서 “범죄 의도가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법원이 이날 두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이들이 돈을 전달한 행위에 ‘범죄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피고인들이 피해액을 변상하고 합의했다는 점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이유중 하나로 분석된다. 재판부는 “검찰의 증거로는 피고인들에게 범죄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하기에 부족하다”면서 범죄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법적으로 ‘범죄 의도가 있다’고 하려면 자신들이 옮기는 돈이 사기 피해금임을 알아야 했는데, 이들은 단순히 ‘돈을 받아 송금하라’는 업체 지시로만 여겼을 수 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판결문 두 쪽을 할애해 별도 소제목을 달아 의견을 상세히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이들이 평범한 시민인 피해자가 준 거액을 받으면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조사에서 인정했고, 이미 여러 해 한국에 체류해 보이스피싱이 만연한 실정을 몰랐을 리 없다는 등의 근거를 제시하며 범죄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이 주목되는 것은 이례적으로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수사 당국의 수사관행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행동책은 아르바이트 시장에서 무한대로 조달될 수 있는 일회용 도구에 불과하다”며 “행동책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주범들에게 범행 자제나 회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피고인들이 처벌을 받더라도 주범은 구인광고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또 “현재 행동책이 체포되면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원이 체포됐다’고 발표하고는 사건을 종결짓고, 주범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하지 않는다”며 “형벌의 목적 중 하나는 범죄 예방 효과인데, 현재의 보이스피싱 사건에서는 그런 효과가 매우 의문”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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