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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돈 된다면 우르르 몰려다니는 증권사, 정체성 찾아야

흔히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 5명 중 4명은 5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한다고들 한다. 별다른 기술 없이 가게를 여는 음식점이 특히 쉽게 망한다. 흑당밀크티든 마라탕이든 유행을 타는 아이템이 나타나면 우후죽순 관련 음식점이 생겨나고 기존 프랜차이즈에서 똑같은 메뉴를 팔면서 출혈경쟁으로 원가도 못 건지게 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증권사는 자영업자들과 다를까? 물론 한달 100만원 집에 가져 가는 일도 빠듯한 음식점과 매년 수천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는 증권사를 비교하는 게 온당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증권사에는 각종 금융공학과 실무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이 즐비하고 투자심의위원회나 리스크관리위원회 등 무분별한 투자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 있다.

하지만 각자의 정체성 없이 돈이 된다 싶으면 너도나도 몰려가 레드오션을 만드는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기대치를 한참 밑도는 증권사의 3분기 실적과 투자 손실로 이어진 무분별한 투자 사례들이 이같은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3분기 중 급등한 채권 금리와 그에 따라 줄어든 운용수익 때문에 대다수 증권사들이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실적을 내놓고 있다. 사실 지난해와 상반기만 해도 미국과 한국 중앙은행들이 잇따라 정책금리를 내리면서 증권사 입장에서 채권 운용은 손쉽게 이익을 내는 ‘캐시카우’에 가까웠다. 증권사마다 다른 증권사에서 잘 나가는 채권 딜러를 스카웃해가며 채권 운용 비중을 늘렸다. 그러나 9월 한달에만 국고채 3년물 금리가 13bp(1bp=0.01%), 10년물 금리가 16bp 상승하는 등 예상과 달리 채권 금리가 반등하면서 채권 운용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었고 한국과 미국 모두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로 정책적 여력이 소진됐다. 증권사 리서치센터 스스로도 정책금리 인하 기대감만으로 금리가 내려가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진단을 내놓았다.

또다른 부진의 원인인 ELS(주가연계증권)의 발행량 축소도 마찬가지다. 지난 3분기 ELS(ELB 포함) 발행량은 전분기 대비 35% 감소하면서 증권사들의 수익 기반을 무너뜨렸다. ELS 발행이 줄어든 주요 원인은 독일 국채 금리에 기초한 DLF(파생결합펀드)의 손실 이슈가 터지면서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 심리가 급속히 얼어 붙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DLF를 무분별하게 판 은행도 문제지만 계열 은행 요청에 DLF에 포함될 DLS(파생결합증권)를 대규모로 발행해준 증권사도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 눈앞의 수익만 생각하며 잠재 리스크를 과소평가한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최근 줄어드는 브로커리지 수수료를 대신해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으로 떠오른 IB(투자은행) 부문도 마찬가지다. IB 수수료는 시장 상황의 영향을 덜 받고 딜 소싱 역량에 따라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중소형사들까지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IB업계 담당자들 마다 “국내 증권사들 끼리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다보니 이익을 낼 딜은 많지 않다”는 푸념을 내놓는다.

국내 증권사 IB본부들이 너도나도 해외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다보니 유럽이나 미국 부동산 시장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사기를 당하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에 딜을 따내고도 좋아하는 경우가 발행한다. IPO(기업공개)나 M&A(인수합병) 시장에서도 트랙레코드를 쌓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증권사보다 상대적으로 입김이 센 대기업이 수수료를 ‘후려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철학과 정체성의 부재다. 각 회사가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잘 할 수 있는지, 감당하기 어려운 변수는 무엇인지 냉철히 판단하는 회사가 드물다. 이래서는 증권사가 개미 투자자와 크게 다를 게 뭐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새로운 분야에 처음 뛰어들어 시장을 개척하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다른 펭귄들은 선두 펭귄을 따라 뛰어들기 전에 차갑고 어두운 물 속에 자신이 잡을 만한 물고기가 있는지, 자신을 노리는 범고래는 없는지 냉철히 판단해야 한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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