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감소·소비투자 부진…최악 복합위기 우려도
우리경제가 저성장·저물가·저금리의 3저(低) 수렁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수출·투자 부진으로 저성장→수요위축→저물가→생산부진의 악순환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초저금리에도 통화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질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경기적 요인에다 생산인구 감소 등 구조적 요인이 중첩되며 복합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언발에 오줌눟기식’ 재정확대에만 매달릴 뿐 민간의 투자나 신성장사업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실효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공유경제의 시금석인 ‘타다’ 사업주를 기소하고, 분양가 상한제·정년 연장 등 핵심 정책에서 부처간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4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통계청 등에 따르면 올해 우리경제는 수출 감소세 지속과 투자·소비 부진 등 내·외수가 모두 악화하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에 처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성장률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 2% 이하로 떨어져 1.8~1.9%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며, 내년에도 2%를 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성장률이 2년 연속 2% 아래에 머물면, 이는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처음이 된다.
1980년(-1.7%) 오일쇼크나 1998년(-5.5%) 외환위기, 2009년(0.7%) 금융위기 때에도 1년 침체한 후 이듬해 바로 6~11%의 성장률로 복귀했다. ▶관련기사 3면
지금의 경기부진은 무역분쟁에서 시작된 미·중 G2간의 경제·기술 패권경쟁으로 글로벌 ‘가치사슬(value chain)’이 재편되는 가운데, 국내적으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투자·소비 위축이 복합돼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초저성장이 일상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여기에다 우리경제는 과거 일본식 ‘디플레이션(deflation)’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 8~10월 3개월간 0% 이하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말에 0%대 중반으로 올라설 전망이지만, 이를 긍정적으로만 보긴 어렵다. 경기부진에 따른 총수요 위축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초저물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하락할 경우 디플레 우려는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많다. 주력산업 침체 속에 부동산 시장이 하강세를 보이는 일부 지방에선 전조증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1.25%로 낮췄는데도 기대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늪에 빠진 우리경제의 단면이다. 금리를 추가로 낮춘다 해도 투자나 소비가 살아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현재의 물가와 경기만 보면 금리를 내려야 할 상황이지만, 자본이탈 등 금융시장 불안 가능성과 정책여력 확보를 위해 선뜻 나서기 어렵다는 복잡한 속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탈출하려면 1930년대 대공황기에 미국이 실시한 ‘뉴딜’ 정책과 같은 보다 과감한 경제활력 대책과 노동시장 등의 구조개혁이 시급하지만, 정부는 재정확대 이외에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내년에 세계경제가 개선되면 우리경제도 회복될 것이라는 ‘천수답식’ 정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명무실화된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의 재건과 정책 추진력 회복이 시급하다.
이해준 기자/hj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