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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중도 군중도 없는 시대…연대의 조건은?
미디어 아티스트 박찬경 개인전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展 개막
후쿠시마 원전 등 재난 일상화된 시대
‘모임’ 키워드 느슨한 연대가능성 타진
신성·엄숙·권위 아닌 ‘낮은미술관’ 제시
작은 미술관, 2019, 벽, 사진, 글, 병풍, 단채널 비디오(15분 50초).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해인(海印), 2019, 시멘트, 5×110×110cm(15), 20×110×110cm(1).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늦게 온 보살, 2019, HD 영화, 흑백, 4채널 사운드, 55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자칫하면 전체주의로 흐르기 쉬운 ‘민중’이나 ‘군중’에 대해 작가 특유의 의심을 보냅니다. 오히려 느슨하면서도 연대감 있는 ‘모임’만이 지금은 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죠” (임대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미디어 아티스트 박찬경(54)의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에서 열린다. MMCA가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전 에서다. ‘모임(Gathering)’을 제목으로 내건 전시엔 영상, 사진, 병풍, 슬라이드 필름 등 총 9점이 나왔다.

분단, 냉전, 민간신앙, 동아시아의 근대성에 집중해왔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이같은 관심사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특히 석가모니 열반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다룬 ‘늦게 온 보살’은 재앙이 덮친 사회에서 개인들의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컨테이너가 화물선에 실려 항만으로 들어오는 것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산에 오르는 ‘보살’과 방사능 오염도 측정기를 든 젊은 여성 ‘가혜’, 그림을 그리고 물건을 만드는 청년들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전혀 개연성 없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건 컨테이너 때문이다. 불태우려 해도 타지 않았던 이 컨테이너는 ‘보살’이 도착하고서야 일이 진행된다. 보살이 컨테이너 안 관을 열자 발이 튀어나온다. 열반에 든 석가모니가 뒤늦게 나타난 애제자에게 두 발을 내밀어 보였다는 곽시쌍부(槨示雙趺)의 모티브다.

산, 불교 신화, 원자력 발전소, 미술 등 줄거리와 개연성 없는 구성요소들은 이미 개연성을 잃어버린 사회를 묘사한다. 영상의 가장 마지막에 ‘보살’과 ‘가혜’가 서로 토닥이는 장면은 파편화된 사회에서 유대가 가능함을 상기시킨다. 전시장에서 만난 박찬경 작가는 “연대의 조건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고 했다. 성인의 열반, 혹은 누군가의 죽음앞에 생겨나는 ‘모임’의 느슨하고도 애틋한 감정이 그 힌트다.

박찬경은 미술관이 이러한 ‘모임’의 장이 될 가능성을 타진한다. 작가는 ‘작은 미술관’이라는 이름아래 신성하고 엄숙하며 권위적인 미술관이 아닌, ‘낮은 미술관’을 제시한다. 프린트된 사진과 연필로 쓴 캡션이 적힌 전시장이다. 성인 남성의 키보다 살짝 높은 낮은 가벽 중간중간 창을 뚫어 안과 밖을 연결하고 작품끼리 서로 차용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전시장에선 5주간 전시 주제와 관련된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해 강연과 토론을 진행한다. 비어 있지만 실제로 다양한 ‘모임’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미술관을 정의한 것이다.

러닝타임 55분에 달하는 ‘늦게 온 보살’은 대부분 이미지가 흑백 네거티브다. 영상의 끝에 방사능이 오염된 후쿠시마의 생물과 자연이 흑백 사진으로 펼쳐지는데, 방사능 오염이 심할 수록 더 환하게 빛난다. 영상으로 본 네거티브 이미지와 연결되며, 방사능 피폭이라는 재난 현실을 상기시킨다.

건너편에서 상영되는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는 우리가 애써 눈감고 있는 후쿠시마를 좀 더 직접적으로 불러낸다. 봄 날 후쿠시마 피폭 마을의 평화로운 풍경과,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한 사진이 교차되며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재하는 비극을 드러낸다.

무속도 이번 전시의 주요 키워드다. 영상 ‘작은 미술관’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건립당시 숨진 4명 노동자를 추모하는 씻김굿 장면이 등장한다. “현대사회는 제의를 자꾸만 추방하려고 한다”고 지적하는 작가는 “제의는 모임을 가능하게 하며 다른 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현대자동차가 2014년부터 10년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진 작가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그동안 이불(2014), 안규철(2015), 김수자(2016), 임흥순(2017), 최정화(2018)가 이를 통해 신작을 선보였다. 박찬경 개인전은 내년 2월 23일 끝난다. 이한빛 기자/v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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