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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징기스칸 군대도 못넘은 인제 한계산성, 세상밖으로!
강원도 인제군-문화재청 국가문화재 지정 자축
해발 1430m, 국내 가장 험준한 곳에 지은 성
대궐에서 나올 만한 진기한 유물들 쏟아져
문화재 지정 임시 개방, 안전 인프라구축후 개방
정재숙 청장 “(국민사랑) 변화 있으되, 변함은 없길”
자작숲, 백담사, 스피디움 멋짐 폭발 인제는 인제다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니 저~게(저기) 저 산꼭대기 산성 가봤나? 우리나라에서 제일 험한데 쌓아놨다니... 저런데 어터 산성을 재(지어)놨는지, 우리 조상님들 대단해~. 유럽, 아시아를 싹 다 정복한 징기스칸 군대도 우리 인제, 여기서 몰살됐다 잖나.”

▶성(城)골 수호신 760년만에 활짝= 강원도 인제군민들은 예로부터 북면 한계리 산1-1번지 안산(鞍山) 아래 자락을 ‘성(城)골’이라고 불렀다. 산 꼭대기(해발 1430m)엔, 그 험준한 곳까지 사람이 어떻게 갔는지, 신(神)이 쌓은 듯 20리(8㎞)나 되는 성이 축조돼 있고, 그 성이 늘 고을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인제(이제) 가면 언제 오나”라는 말은 징기스칸의 몽골군 한 부대가 한계산성에서 몰살당하기 직전 읊조린 체념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 성, 한계산성(寒溪山城)이 수호신 역할을 톡톡히 했음은 역사서에 잘 기록돼 있다.

지금 강원도 인제군을 묘사하는 표현은 달라졌다. 서울서 차 안막히면 1시간 40분이면 도달하기에, 빨리 와야 하는데 조금 늦었다는 뜻으로 “왜 인제(이제) 왔나” 하는 것이다.

또 한계산성, 설악산, 백담사, 대승폭포, 원대리 자작나무숲, 자동자경주장 스피디움, 스피디움 호텔 앤 콘도, 산촌박물관, 박인환문학관 등 가치있는 것들이 집중된 곳이기에 “인제(이제)는 인제다”라는 슬로건도 나왔다.

징키스칸 군대 조차 넘지 못한 한계산성의 우리 야별초 군대와 강원도 인제 민관군 방어대는 수성에 그치치 않고 이곳 산악-계곡지형에서 몽골군을 전멸시켰다. 한계산성 고려군의 용맹함을 재연한 퍼포먼스.

▶수성, 몽골군 섬멸, 관동 영토확장 교두보= 1259년 몽골 군대는 설악산 국립공원 서쪽 안산 정상부의 한계산성을 공격했다. 이곳만 제압하면 지금의 속-고-양 영북지역을 장악해 손쉽게 동해안을 남진하고, 화주(지금의 함흥)에 있던 원나라(몽골)의 거점 쌍성총관부의 백두대간에 대한 지배력이 커졌을 텐데, 우리 민관군이 합세해 가장 험준한 곳에 축조한 한계산성은 난공불락이었다. 한계산성을 공격한 부대는 함흥과 주변 땅을 몽골에 팔아먹은 배신자 조위가 이끄는 몽골군이었다.

내설악 적십자 산악구조대 신윤철·백창우씨는 “성을 지키는 방법은 농성도 있고, 입보(入保:성내 주민 보호 및 항전)도 있고, 성외 공격 등이 있는데, 한계산성을 지키던 안홍민 야별초군은 수성(守城)과 입보 그치지 않고, 이 험준한 지역에서 몽골군을 기습해 살아간 자가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내용은 고려사에 잘 기록돼 있다”고 전했다.

한계산성이 굳건했기에 몽골은 백두대간 이동(以東) 지역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못했고, 이는 90년 뒤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제거하고, 반원(反元) 자주 정책이 관동지방 즉 강원도-함경도에서 가장 큰 성과 내는 발판이 된다. 신라의 ‘초라한 삼국통일’로 찌그러져 있던 우리 국토가 청진 근처, 개마고원 북쪽 백두산 인근까지 확장되는 디딤돌이 됐던 것이다.

한계산성이 고려의 북동쪽을 지켜내면서, 나중에 고려는 강원 고성 근처에 머물러있는 국경을 청진-개마고원 북쪽으로 확장하는 반원 자주독립 운동을 펼칠 수 있었다.[네이버 자료 재구성]

▶태풍과 폭우를 넘는 인제 민관군의 복구= 수백년 은둔한 채 ‘성골’을 지키던 한계산성은 뜻있는 지역 전문가의 천거로 1973년 7월 강원도문화재가 된다. 그로부터 46년간 지역민과 뜻있는 사학자들이 인고를 세월을 거친 끝에 2019년 10월 25일 국가지정문화재(사적 553호)가 됐다.

성의 존재를 강원 북부사람들은 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너지고 훼손된 성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강원도문화재가 된 이후였다. 강원도와 인제군은 760년간 무너지고 부서진 성곽을 수차례 보수했다. 국가 지정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아 폭우와 태풍으로 인한 파손이 있을 때에도 주민과 공무원들이 보수공사에 나섰다.

10년 전 부터 뜻있는 문화재 전문가, 학계, 주민, 지자체 담당 공무원이 국가 문화재 추진에 나섰고, 한국성곽학회와 지역사회가 그간의 조사작업을 집대성해 2011년 첫 학술심포지움을 열었다. 험준한 지형을 뚫고 올라가 지난(至難)한 발굴작업도 벌여 많은 유물이 확인된 2015년, 전국적 규모의 3차학술대회를 마쳤다.

▶포곡식 산성…징기스칸군 격퇴 세계적으로도 몇 안돼= 학계는 ▷국내에서 가장 험준한 곳에 축조된 성(城)이라는 점 ▷몽골의 침략을 결사항전으로 격퇴한 몇 안되는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 ▷계곡을 감싸고 둥글게 축조된 포곡형 산성이라는 특성 등 독보적인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는 점을 공유하고 확산시키면서 중앙정부를 설득했다. 정부도 그 가치를 알아보고는 적극적인 발굴작업을 벌여 생각지도 못한 귀한 가치의 유물들을 대거 발굴했다.

지방 문화재가 국가 지정 사적으로 격상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인데, 이례적으로 문화재청 정재숙 청장이 25일 오후 2시 바쁜 일정을 뒤로한채 설악산 국립공원 십이선녀탕 바로 앞 한계산성 진입 언덕까지 찾아 축하행사를 벌인 것은 그만큼 값진 문화재라는 뜻이다.

정 청장은 벅찬 마음을 가누지 못하더니, “변화는 있되 변함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모든 국민이 한계산성의 가치를 공감하고, 언젠가는 꼭 찾아 줄수 있도록 국민친화적-자연친화적 인프라가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760년전 그 의기, 단결, 호국, 애민의 뜻이 영원하기를 바란다는 뜻일 것이다.

한계산성 국가문화재 지정 기념식에 참석한 정재숙(왼쪽) 문화재청장

▶국민 접근 쉽게 인프라 착업 곧 착수= 현재 한계산성에 우리 국민이 접근토록 하기 위한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할지 강원도와 인제군이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있다.

산세가 깎아지른 절벽인데다 미개방 지역이라 십이선녀탕-옥녀탕에서 시작되는 한계산성 남문까지의 트레킹은 쉽지 않다. 곳곳이 유격훈련하는 공수부대원처럼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곳인데도 60대 노인이 손녀와 함께 오르고, 다이어트 중인 아주머니, 장비를 둘러맨 사진 작가 등이 악착같이 오른 것은 한계산성의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인 듯 하다.

지역문화재 전문가이자 안전요원인 강원도 인제 토박이 안내원들은 쉽게 잡기 어려운 트레킹 기회를 얻은 등산객의 손을 잡아주고 밧줄을 고쳐매며 안전한 등정을 도왔다. 모두가 개척자들이라, 온 국민이 이곳에 하기 위해선 어떻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고견을 내놨다. 단풍이 절정기라, 몇 십미터만 올라도 땀이 흘렀지만 홍엽의 자태에 취해 힘든 줄을 몰랐다.

▶쐐기돌 박은 옛 석벽, 주민복구 새 돌, 한몸= 성곽에 다다르자 성벽의 색깔이 아래, 위 다르다. 아래쪽은 단단하게 쐐기돌까지 박혀 760년 지탱한 성벽이지만 위쪽은 인제 주민과 강원도 공무원, 문화재 담당 및 국립공원 직원들이 보수작업을 벌이며 다시 쌓은 새 석벽이다.

한계산성 [문화재청 제공]

출토된 유물은 이 산성이 고려의 마지막 보루로서, 자주독립의 전진기지로서 얼마나 귀중한 가치가 있는지를 말해준다.

상성(上城)과 하성(下城) 중 상성에서는 청동 유병(식물성 기름이 남아 있어 더욱 놀라게 함), 청동 마상배(말을 타고 술이나 음료를 마실 때 쓰는 잔) 등 청동제 매장 문화재와 철로 제작한 세 발 달린 솥, 철정(鐵鼎이 나왔다. 첨단 연대측정 기법으로 쟀더니 1210년에서 127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철정의 다리 길이는 무려 84㎝나 됐다.

▶마의태자 부흥운동 가능성도= 유물 158점 중에는 송나라 동전, 중국 서쪽 서하국 엽전, 삼지창도 나왔다. 하성에서는 옥석유리 유물, 상감청자 조각, 벼루 조각, 도기, 물고기 뼈 등이 출토됐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 논평할 어휘가 없다. 어쩌면 당시 철옹성 한계산성에서는 지체 높은 사람과 군인, 일반 백성이 함께 생활하며 적을 막아낸 것 같다.

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성(상성)의 둘레가 6278척(1902m), 높이 4척(1.3m)이라 기록되어 있다. 성안에는 우물터, 대궐터, 절터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우물터는 찾을 수 없고, 대궐터와 절터를 알아볼 수 있다. 몽골 항전을 위한 석벽 증축 이전에 경순왕과 마의태자의 은둔지였을 것이라는 추론도 일리있어 보인다.

설악산 국립공원 내 미개방지로 남아있는 한계산성 위치

▶느린 산촌의 추억, 빠른 스피디움의 역동성= 한계산성은 설악산 중에서 수많은 ‘봉’자 봉우리들 사이에 우뚝 솟은 유일한 ‘산’ 안산(鞍山)에 있는데, ‘안’은 말 안장을 뜻한다.

원대리 뿐 만 아니라 자동자 경주장 ‘스피디움’ 인근을 비롯한 인제의 곳곳에 자작나무 군락이 있는 점, 자작나무 껍질은 말 안장의 장니(흙이 묻지 않도록 좌우에 다는 것)에 쓰인다는 점, 장니 위에 천마도(신라 천마총)를 그렸다는 역사적 사실이 오버랩되면서, 혹시 자작나무와 인제 안산, 기마병의 말이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상상도 해본다. 자작나무에서 나오는 기름이 말에 흙이 묻지 않도록 도와주고, 이 기름은 산촌의 호롱불을 피우는데에도 쓰인다.

원대리 자작나무숲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2019년 가을, 고결한 흰색 자작나무의 늘씬한 몸매, 노란색 자작 가을 잎, 붉은 단풍이 삼색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으므로, 월차 내서 1박2일 주중 인제 여행을 한다면 쾌적하게 여유있게 즐길 수 있겠다.

기린면에 있는 인제 스피디움은 스포츠주행, 서킷택시, 서킷카트, 실내놀이터 브로키즈하우스, 게임 엔터테인먼트 플레이존 등 대중적 놀이시설과 4성급호텔, 콘도가 밀집된 이색 여행 명소이다.

인제 스피디움.
인제 스피디움 호텔

▶인제는 인제다= 수려한 생태의 설악산과 십이선녀탕, 산촌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산촌박물관,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 문학 세계가 잘 정리된 박인환 문학관도 빼놓을 수 없다. 백담사는 주변 경관도 수려하거니와, 국민들과 스님들이 쌓아놓은 수천기의 돌탑이 장관이다.

산촌박물관 인근에는 인제의 특산품인 황태, 버섯, 사과, 말린 가지 등을 싸게 살 수 있는 상설 장터 인제군농특산물전시판매장이 마련돼 있다.

변화무쌍한 날씨 큰 일교차가 빚어낸 사과 맛이 일품이고, 송이와 표고 맛을 모두 품은 송고버섯은 건강을 잔뜩 품었으며, 씹을 수록 고소하다. 가 있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곳. 그래서 인제(이제)는 인제다.

인제군의 조상들은 일찌기 스키를 탔다. 겨울 사냥도구들 [산촌박물관]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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