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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스피싱A-Z]“나 검산데.. 넌 대포 통장 사기 혐의”… 구속영장까지 제시
해킹 어플 까는 순간 경찰서에 신고해도 보이스피싱범이 전화 받아
경찰·검찰에 전화하자 “범죄 피의자됐다”는 말에 수천만원 직접 건네
울산에 사는 직장인 C(32) 씨가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과 대화한 카카오톡. 보이스피싱범은 B씨가 대포통장 사기사건과 연루돼 있다며 무죄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금감원 직원에게 돈을 넘겨 검수하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했다. [피해자 제공]

보이스피싱범이 피해자들에게 보낸 수사협조 의뢰 통지서. [서울 용산경찰서 제공]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 보이스피싱 기사냐?’라고 생각했는가? 보이스피싱 사건은 이제 더이상 새롭지가 않아 뉴스거리조차 안되는, 흔한 범죄가 돼버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이순간도 누군가는 보이스피싱범에게 돈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이스피싱범이 옛날처럼 어눌한 말투로 국가기관을 사칭하며 돈을 뜯어내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당신의 성별, 이름, 나이, 직업 등을 알고 접근한다. 심지어 당신의 약점까지도 알고 있다. 본지는 주1회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수법을 A부터 Z까지 다루면서 속지 않는 방법을 소개한다. 부모님과 친구에게 널리널리 알려야 한다. 다시 강조하건데 방심하는 순간 당한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충남의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 A(25) 씨는 보이스피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뉴스에서 많이 봤었기 때문에 의심가는 전화가 오면 받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당했다.

이번 보이스피싱은 전형적인 ‘검찰’ 사칭형이다. A 씨는 지난 8월 2일 오후 검사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포통장 사기 사건에 연루돼 있어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것이었다. 처음 A 씨는 그럴 리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검사가 “그래도 개인정보가 유출됐을 수도 있으니 어플을 깔아 확인해보라”고 말하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플을 다운로드 받았더니 “악성 프로그램이 발견됐다”는 경고창이 떴다. 순간 철렁했다. 잠시 뒤 검사는 “실제로 당신의 대포통장 사기사건에 얽혔는지 경찰과 검찰에 직접 전화해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말그대로 이를 확인하면 될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네이버에 경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검색해 나오는 공식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손수 확인해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경찰과 검찰 모두 “사기사건 피의자로 곧 구속영장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직접 손으로 경찰과 검찰 번호를 찾아내 전화했는데 들은 답변이었기 때문에 그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보이스피싱범이 피해자들에게 보낸 수사협조 의로 통지서. [서울 용산경찰서 제공]

이는 보이스피싱범들의 덫이었다. 이들이 보내온 어플을 깔면 피해자가 아무리 어디에 전화를 걸더라도 모든 전화는 보이스피싱범들에게 연락이 닿게 된다. 112에 보이스피싱 의심신고를 했어도 그들이 받는다. 때마침 처음 연락했던 검사가 구속영장이 나왔다며 메일로 한 링크를 보내왔다. 클릭을 하니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온 구속영장 통지서였다. 생전 처음 보는 ‘구속’ 이라는 단어만 봐도 손에 땀이 났다. 어머니와 동생도 같이 구속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욱 겁이 났다.

검사는 개인정보 유출이 빈번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당신의 계좌가 대포통장에 쓰이지 않았다는 것만 입증하면 된다”고 타일렀다. 그러면서 “OO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아보라”고 지시했다. “대포통장 사기사건에 연루된 계좌를 만약 은행원이 대출을 해주면 그 은행원도 사기사건 공범”이라며 수사에 협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동시에 “대출한 돈을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넘기면 검수를 통해 당신이 사기사건에 관여했는지 안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다 거짓이다.

하지만 놀란 A 씨는 이미 무언가에 홀린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경찰과 검찰 공식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 ‘범죄 피의자가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성이 마비돼 버렸다. 그때부터는 어떻게든 무죄를 입증해 구속되는 일을 막아야한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는 검사가 시키는 대로 회사에 연차를 냈다.

보이스피싱범은 치밀했다. 은행에서 큰 돈을 인출할 때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할 수도 있으니 “승용차를 현금으로 구입해야 할인을 받는다”고 구체적인 지시까지 내렸다. 결국 그는 3일간 10차례에 걸쳐 은행에서 2000~3000만원의 대출을 받아 이를 현금으로 직접 넘겼다. 피해금액만 1억8520만원이다.

A 씨는 갑자기 검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바뀌고 연락이 두절되자 그때서야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큰 대출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도대체 어떻게 속게 된 것인지 생각을 하자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면 그들이 죽자고 달려들었기 때문에 또 속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책”이라고 전했다.

A 씨가 현금을 인출해 전달했던 금감원 직원 사칭 보이스피싱 전달책은 경찰의 수사 끝에 잡혔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8월 중순 피의자 B(32) 씨를 사기 및 위조공문서 행사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이 수사 끝에 보이스피싱 인출책 B(32) 씨를 체포하려고 한 순간에도 그는 다른 피해자 C(32) 씨에게서 돈을 건네 받고 있었다. 보이스피싱이 얼마나 무섭냐면 경찰이 C 씨 눈 앞에 등장했을 때에도 ‘정말 검찰말대로 구속이 되나 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경찰도 당황해 하고 횡설수설하는 C 씨를 보고 처음엔 그가 보이스피싱 공범이라고 의심했다. 한참 진술을 하다 보니 그도 피해자였다.

C씨의 휴대폰에는 검사를 사칭한 이와 나눈 카카오톡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보이스피싱범은 C 씨에게 체포영장 등 수사자료를 보내는가 하면, 수사에 협조를 잘하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피해자 C 씨는 2160만원을 이들에게 이미 입금한 상태였다. 운좋게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인출책에게 현금 1970만원을 전달하려고 한 순간 경찰을 만난 것이었다.

울산에 사는 직장인 C(32) 씨가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과 대화한 카카오톡. 보이스피싱범은 B씨가 대포통장 사기사건과 연루돼 있다며 무죄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금감원 직원에게 넘겨 돈을 검수하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했다. [피해자 제공]

C 씨 역시 대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는 “그들이 보내는 IP주소에 들어가면 내 이름이 피의자로 나오고 보험 정보까지 언급하며 협박을 하니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경제력이 있는 2030대 직장인 남성이 보이스피싱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경찰서 한번 가보지 않은 엘리트 코스만 밟은, 어느정도 경제력이 있는 성실한 남성을 노린다. C 씨도 “그동안 민형사법에 대해서 알 필요도 없어 잘 몰랐는데 그래서 당한 것 같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법을 몰라도 구속영장을 이메일로 보내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검사라 하는 이가 계속 협박을 하면 판단력이 흐려져 이 조차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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