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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가짜뉴스전’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흔들었나
우크라이나 침공은 가짜뉴스전 시험대
브렉시트·트럼프 당선에서 효력 입증
스나이더 교수, 권위주의 광풍 연구
배후 러시아 지목…SNS시대 여론 취약
“필연성의 마법을 깨트리려면 우리는 어떤 예외적인 길을 걷는 모습이 아니라 남들과 나란히 역사 속에 자리한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영원성의 유혹을 피하려면 우리는 시기적절한 공공 정책을 가지고 불평등부터 시작해서 우리 자신이 직면한 특수한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에서)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코미디언인 젤렌스키가 대통령으로 선출돼 화제가 됐다. 인기드라마에서 대통령을 연기한 그의 당선을 코미디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 이면은 단순하지 않다. 2014년 사실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략적 요충지로서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낀 지정학적요소, 푸틴의 제국 복원의 유라시아 구상 등이 깔려 있다.

예일대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전쟁으로 본다. 그는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부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유럽연합과 미국에게 일종의 리얼리티 테스트”였다고 말한다. 러시아가 퍼트린 허구에 세계가 휩쓸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최근 우려할 만한 권위주의 광풍, 파시즘의 그림자를 추적, 사실과 허구가 뒤바뀌고 자유민주주의가 실종돼가는 현실을 치밀하게 보여준다.

그 중심에 러시아가 있다. 저자는 먼저 소련 해체 이후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한 과정을 살피는데, 옐친에서 푸틴 집권, 푸틴의 재집권의 배경에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들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대상을 권력에 앉히기 위해 테러 연출, 투표조작을 일삼았고, 파시즘을 끌어와 과두제장기집권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으로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까지, 러시아가 만들어낸 가짜뉴스가 서방세계를 어떻게 흔들어 놓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선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정보전이다. 전쟁 역사상 가장 정교한 전술이란 평가다. 푸틴은 트위터봇과 인터넷트롤을 이용,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에서 잔혹행위를 하고 있다” “MH17 격추 사고는 우크라이나의 짓이다”는 가짜뉴스를 퍼트렸다. 철도, 항만 당국, 재무부, 방위시설, 송전소까지 해킹해 무력화시키는 실제적인 사이버전을 벌였고, 국제여론과 언론, 우크라이나 국민까지 교란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의 가짜뉴스전은 유럽연합으로 이어졌다, 2016년 베를린에서 13세의 러시아계 독일 소녀가 난민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했다는 가짜뉴스가 세계로 퍼져나갔는데 이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신호로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독일의 한 소셜미디어가 활약하는데, 이들은 이민을 위험한 것으로, 제도권정치를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로 몰아세우며 독일대안당을 구원자로 내새우게 된다. 이 당은 2017년 9월 선거에서 전체 투표의 13퍼센트를 얻어 1933년 나치 이래 극우 정당이 독일의회에서 의석을 얻은 첫 사례가 됐다.

영국의 브렉시트에도 저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2016년 6월 투표를 앞두고 트위터에서 브렉시트 논의가 이뤄졌는데, 이 중 3분의 1 정도가 봇에 의해 작성된 것이란 얘기다. 정치적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는 봇의 90퍼센트 이상, 즉 트위터 계정 419개가 러시아의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에 적을 두고 있었다는 것. 국가의 운명을 가름하는 선택 앞에서 영국인들은 봇이 살포하는 내용을 읽으며,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이 봇들이 영국을 약화시키기 위한 러시아 대외정책의 일환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트럼프 당선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에서 실험한 사이버전의 하이라이트로 본다. 트럼프가 후보로 출마하자 러시아 사이버전 전문 중추부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는 미국부를 증설, 규모를 키우고 100명 가량의 미국 정치 활동가를 끌어들였는데, 그들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들은 ‘피자게이트’와 ‘정신요리’ 등 힐러리를 겨냥한 가짜뉴스를 제작, 소셜미디어에 퍼뜨렸고 수십억번 공유되게 했다. 선거가 끝난 후 트위터는 러시아 봇 5만개를 찾아냈고, 3814개 계정이 러시아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에서 가동한 것을 확인했다.

소셜미디어시대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로 지목된다.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티머시 스나이더 지음유강은 옮김부키

저자는 세계가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로 바뀌는 과정을 ‘필연의 정치’와 ‘영원의 정치’ 개념으로 설명한다. 민주의의를 통해 참여와 번영이 증대하는 사회로 당연히 나아가리라는 근거없는 확신인 ‘필연의 정치’에 매몰될 때, 영광스러운 과거, 실제로는 처참한 과거에 대한 동경을 이용해 국가를 지배하는 ‘영원의 정치’에 쉽게 이끌린다는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가짜 민주주의의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이다. 바로 ‘책임의 정치’다.

저자는 반민주적 정치로 가는 데 ‘가짜 뉴스’가 결정적 역할을 한 점에 주목한다. “이 말은 특정한 사건에 관해 혼란을 퍼뜨리는 동시에 보통 말하는 언론의 신뢰를 깎아내리기 위해 언론 기사를 가장한 허구적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했다”며, 저자는 “영원의 정치인들은 처음에는 직접 가짜 뉴스를 퍼뜨리다가 그 다음에는 모든 뉴스가 가짜라고 주장하고, 결국은 자기들이 연출하는 스펙터클만이 진짜라고 주장한다”고 지적한다.

20세기 전반, 세계가 어떤 광기에 휘둘렀는지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역사학자의 경고이자 조언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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