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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많던 ‘을지로 사과’ 어디로 갔을까
시범조성된 사과나무 거리 열매들
집회시민·취객에 뭉텅이씩 사라져
“눈으로만 감상하세요” 안내 무색
실종된 시민의식에 공무원 한숨만
市, 월동상태 점검 뒤 내년 확대
지난달 말 을지로 사과나무 수분에 사과가 열려있는 모습(왼쪽)과 이달 초 사과가 다 사라지고 없는 모습. 한지숙 기자/jshan@

“자연 낙과 상태로 두려고 했는데, 그냥 한숨만 나옵니다.”

서울 을지로 사과나무 거리를 담당하는 서울시 조경과 공무원의 유선을 타고 전해져 오는 목소리에 힘이 빠져있다. 지금 쯤 붉은 빛이 도는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어야 할 을지로 사무나무 거리에 사과가 단 한 알도 남아있지 않아서다. 기자가 지난 4일 시청서 을지로입구까지 걸어보니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사과알이 십수개 달려있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초라해보였다. ‘만지거나 따지 마시고 눈으로만 감상하세요’라고 적힌 안내문만 무색하게 걸려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18일 유동인구가 많은 을지로(시청~을지로4가 1.6㎞ 구간)의 가로변, 교통섬 등에 사과나무를 수분(樹盆) 형태로 54그루 설치했다. 전남 장성군에서 재배한 사과나무 8~9년생 짜리를 을지로 곳곳에 보기좋게 배치했다. 모두 2500만원을 들였다. 유실수를 서울의 최도심에서도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스무여날만에 사과는 볼 수 없게 됐다.

11일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사과는 중구청 잔디광장 안 2그루에서만 볼 수 있을 뿐 가로변에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청 안 사과는 보는 눈이 많아서 감히 따가지 못하는데, 가로변이나 교통섬에 둔 것들은 시민들이 모두 따간 것 같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시민들에게 사과가 빨갛게 익어 자연 낙과되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사과가 익기도 전에 다 따가버렸다”며 아쉬워했다.

도둑은 시민 또는 관광객으로 추정된다. 낮 동안에는 변화가 없던 사과 갯수는 다음날 아침이면 뭉텅이씩 줄어 있었다. 술취한 시민이 객기를 부렸거나, 사과를 처음 본 관광객이 기념용으로 슬쩍 챙겼을 수도 있다. 시 관계자는 “관상용 사과목을 납품하는 사람들 말로는, 동남아인들이 본국에서 재배하지 않는 사과를 신기하게 여겨 따가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시가 을지로에 사과나무를 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4월에는 종로구청과 함께 율곡로 흥인지문 성곽공원 부근(가로녹지대 150m)에 2년생 153그루를 심었다. 충남 예산군이 묘목을 기증한 율곡로 사과나무는 올해는 열매를 맺지 않았다.

처음 을지로에 사과나무 거리 조성사업을 검토할 때 시도 관리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앞서 2014년에 종로4가에 사과나무 75그루를 심을 당시에도 시민들의 조급함에 사과가 제대로 익을 새 없이 모두 따가버린 전례가 있어서다. 몇년이 지났어도 시민 의식이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서울 도심 가로변 사과나무 조성 사업은 2014년 시장이 종로구 현장시장실을 운영할 당시 한 시민이 옛 가요 ‘서울’의 노랫말 처럼 ‘종로에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라고 제안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박원순 시장이 검토해 보라 지시했다. 시는 올해 시범 조성한 을지로 사과나무가 동해를 입는 지 내년 봄에 잎을 틔우는 지 등 월동 상태를 살피기 위해 화분을 치우지 않고 현 위치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후 내년에는 다른 주요 도로로 확대 설치할 계획이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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