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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일한의 住土피아] ‘로또’의 대물림, 강남 아파트

1977년 국내 한 신문사가 대학생 5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81%가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겠다고 답했다. 여학생의 선호도가 특히 높았다. 91%에 달했다. 중앙난방, 목욕시설,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아파트는 당시 대학생들의 로망이었다.

그해는 ‘중동특수’로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수출 총액 100억달러 달성한 해다. 76년 이후 경제성장률은 연간 10%대나 됐다. 막 사회에 진출한 1940년대생들은 자연스럽게 아파트에 주목했다. 당시에도 텔레비전 연속극의 젊은 부부는 으레 아파트에 살았다. 강남지역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분양을 한 시기가 그때다.

반포주공 아파트 1차(준공 1973년), 압구정 현대아파트(1975~1981년), 잠실 주공아파트(1975~1977년), 반포 주공아파트2·3차(1977년), 압구정 한양아파트(1977~1984년), 은마 아파트(1978년~1979년), 반포 경남아파트(1978년), 반포 한신아파트(1977~1985년), 서초 우성아파트(1979~1982년), 역삼 개나리아파트(1980년), 개포 주공아파트(1981~1983년), 서초 삼호가든(1981~1986년) 등이 잇따라 지어졌다.

높은 선호도만큼 아파트값은 폭등했다.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아파트가 대표적이다. 1977년 1차부터 4차까지 순차적으로 분양했는데 3월 평당(3.3㎡당) 28만원에 팔던 걸 9월엔 42만8000원에 분양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몰렸다. 448가구 분양하는 데 2만7000여명이나 청약했다. 주변 강남권 아파트 시세가 평당 50만~60만원까지 급등해 시세보다 쌌기 때문이다.

그해 정부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처음 도입한다. 요즘 말 많은 분양가상한제의 출발이다. 당시 건설부는 ‘월급쟁이가 5~7년 정도 벌어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을 상한제 기준으로 삼았다.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요즘 서울 주택시장의 화두는 단연 강남 재건축 아파트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분양했던 그 아파트들의 귀환이다. ‘당첨만 되면 몇 년 월급치 보다 낫다’던 그 아파트가 40년후 재건축하면서 다시 ‘로또’ 아파트 소리를 듣고 있다.

당장 분양 단지마다 사람이 몰린다. 역삼 개나리아파트 재건축 단지인 ‘역삼 센트럴자이’엔 9000여명, 삼성동 상아 아파트 재건축 아파트인 ‘래미안라클래시’엔 1만명 이상 청약했다. 당첨만 되면 시세차익만 5억원 이상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누가 먼저 3.3㎡당 1억원을 찍을 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최근 반포 한신아파트를 재건축한 ‘아크로리버파크’가 3.3㎡당 9992만원에 실거래 신고 됐다. 반포주공1단지, 잠실주공5단지, 압구정 현대아파트, 은마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강남 전체 주택시장을 흔드는 변수로 여겨진다. 분양만 하면 ‘대박’날 거라며 호들갑이다.

사실 1977년부터 현재까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은 기간은 10년 정도(1981년6~1982년12월, 1999년1월~2007년9월)에 불과하다. 2015년 이후 유명무실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통제받고 있다.

그럼에도 강남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은 계속 올랐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죽기 직전인 1970년 후반, 3저호황을 누린 1980년대 중반,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한 90년대 중반, 카드 대란에 이어 아파트 버블로 이어지던 2000년대 중반까지 강남과 분당, 1기신도시 등의 아파트값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상승세를 이어왔다.

그때마다 정부는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고분양가를 지목했다. 물론 시장에선 반대로 움직였다. 오히려 새 아파트 분양가가 시세보다 싸다며 청약에 열을 올렸다. 결과적으로 분양가상한제를 통한 가격 통제 정책은 실패했다.

1977년 정부는 월급을 5~7년 모으면 내집마련을 할 수 있는 시대를 목표로 삼았다. 40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서울 중간 소득층(5분위 중 3분위)이 중간 가격대(5분위 중 3분위) 아파트를 사려면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13.8년 모야한다.

지금 강남 새 아파트 시장은 현금부자들만의 잔치다. 40년 전 중산층이 한번 노려봄 직했던 아파트는 이젠 ‘금수저’ 만의 전유물이 됐다. 서울 중간 소득층이 월급 이외 다른 소득없이 강남 아파트에 해당하는 상위 20% 가격대 아파트를 사려면 30년 이상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40년만에 화려하게 돌아온 강남 새 아파트는 분양가상한제로 시세보다 더 싸질 게 뻔하다. 분양받는데 성공한 소수의 현금 부자들은 대출 규제 등으로 청약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대다수와 그만큼 자산 격차를 더 벌릴 것이다.

과거 분양가상한제는 중산층을 위한 것이었다. 시세보다 싼 분양가로 무주택 서민들을 중산층으로 끌어 올리는 주요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 분양가상한제는 이미 부자인 소수에 혜택을 밀어주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분양가상한제가 40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길 것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비판이다.

박일한 기자/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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