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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예수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킨 곳은 고향 갈릴리에서였다. 어머니와 함께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대 받았을 때, 잔치 중간에 포도주가 떨어진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당시 관습으로는 손님을 초대한 파티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은 큰 실책이었던 모양이다. 예수는 돌항아리들을 물로 채우게 한 뒤 포도주를 만들어 잔치를 무사히 이어가게 해준다. 예수는 그 후 가버나움이나 예수살렘 등에서 몇 가지 기적들을 일으킨다. 그러다가 다시 고향 갈릴리로 돌아가는데, 그는 “고향에서는 나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다소 맥락 없는 말씀을 하신다.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이 수수께끼 같은 구절이 다시 떠올랐다. 연구실을 정리하고, 강의 계획서를 입력하고, 수업에 사용할 새 책들을 사는 등 물리적인 준비를 끝내고, 새 학기마다 필자가 꼭 거치는 정신적인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였다. 고향에서 선지자가 높임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족과 어렸을 때의 그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자 자신들의 친구이고 이웃이었던 예수가 그들이 그토록 기다려온 구세주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새 학기에 필요한 정신적인 준비는 이처럼 학생들의 과거의 사실을 기억함으로 현재 혹은 미래에 일어날 커다란 변화를 보지 못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 기억 속의 제자를 새 학기에 불러내지 않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창작의 변화를 추적해나가는데 필요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지만, 과거 기억이 너무 크게 자리 잡으면 새 학기 수업에서 현재의 그들을 제대로 만날 수 없게 된다. 혹여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다면 교수에게나 학생에게나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 방학을 보내면서 학생들이 이룬 변화를 선입관 없이 바라보려면 이 마지막 준비가 매우 중요하다. 아름다운 변화를 놓치지 않도록 현재의 눈으로 바라볼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예수가 갈릴리에 돌아갔을 때 사람들이 매우 반겼다는 점이다. 이는 예수를 구세주로 환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본 기이한 표적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난다. 이처럼 우리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도 그 본질을 놓치기가 쉽다. 때문에 눈에 띄는 작품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던 학생의 긍정적인 이미지도 무한 소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과거의 기억이라도 현재까지 이어서 선험적으로 판단하면, 학생의 무한한 가능성을 부지불식간에 제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들의 창작 능력은 물론이고 생활태도도 앞으로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뭐, 이는 새 학기에 모든 학생을 공평한 마음으로 대하고자 하는 작은 실천과도 닿아 있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교수만 그러하겠는가. 무엇을 시작하건, 과거의 결과나 실패에 기죽지 않고 과거의 영광이나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현재를 도전의 시작점으로 두는 것이 지혜인 듯해서이다. 또 내 주변을 스스로 전형적 인물들로 채우지 않고, 새로운 창조적 인물들이 자발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들을 설레며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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