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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많이 보는 로스쿨…30대는 엄두도 못낸다
다양한 경험 가진 법조인 양성하겠다더니 30대 이상 합격자 6%대
나이가 스펙되자 고등학교때부터 로스쿨 준비하기도
서울의 한 로스쿨에서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서울 성북구의 직장인 이모(33) 씨는 최근 회사를 그만두고 로스쿨을 준비하려고 맘먹었지만 며칠 만에 포기했다. 로스쿨을 합격자 통계를 찾아보니 합격자의 90% 이상이 20대였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나이’라는 문턱 앞에 이 씨는 30대에 변호사를 꿈꾸는 것은 역시나 사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막연히 로스쿨이 다양한 경험을 가진 법조인을 양성한다고 했으니 늦었지만 도전해볼 만 하다는 생각을 한 스스로가 순진했다”며 “결국 대학교를 칼 졸업한 학생들이 로스쿨에 진학한다면 로스쿨을 왜 만들었느냐”고 꼬집었다.

로스쿨이 도입된 지 10년, 지원자들에게 ‘나이’는 높은 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합격자 대부분이 20대라는 것이 공개되면서 30대 이상 지원자들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지원자 수가 감소되다 보니 다시 합격자 비율이 낮아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실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발표한 ‘2019학년도 로스쿨 합격자 통계자료’에 따르면 합격자 10명 중 7명이 23~28세(69.8%)였다. 연령별 현황을 보면 26~28세가 748명으로 전체 35.02%로 가장 많았다. 이어 23~25세가 743명(34.78%)으로 그 뒤를 이었다. 30대 이상의 합격자 비율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32~34세는 141명(6.6%), 35~40세 107명(5.01%), 41세 이상 39명(1.83%) 순으로 한자리 수에 그쳤다.

30대 이상 합격자 수가 적은 이유는 20대에 비해 지원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각 로스쿨에서 20대의 젊은 지원자를 선호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2015년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상대로 지원자들의 나이차별을 없앨 것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로스쿨 준비할 때 나이 어린 학생들이 암기능력이 좋고 말을 잘 듣기 때문에 변호사 시험에 더 유리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로스쿨 학원에서도 이를 이미 전제를 깔고 상담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 로스쿨에서 어린 지원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자 30대 이상 지원자들은 로스쿨 지원 자체가 꺼려진다고 토로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지원자를 선발하고 로스쿨에서 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기본 취지는 사라졌다는 비판도 나왔다. 서울 강남구의 자영업자 윤모(34) 씨는 “사업을 하며 법을 몰라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보면서 변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합격자 비율이 한자리수라는 것을 보고 포기했다”며 “이는 고시 낭인을 없애고 관련 경험이 풍부한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처음 설립 목적과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로스쿨에서 나이가 스펙이 되다 보니 일찍부터 준비하는 사람이 승자라는 말도 돌았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로스쿨 입시 때 어필하기 위해 미리 제2외국어를 배운다거나 관련 자격증을 딴다거나 동아리 활동을 하는 고등학생들도 생기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정한 로스쿨 선발 과정을 위해 현재 로스쿨 입시 시스템에 문제는 없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관계자는 “나이가 학업능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며 로스쿨 도입취지와도 맞지 않다”며 “나이뿐만 아니라 출신학교 등도 함께 보지 않도록 하는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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