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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조국과 조광조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 회장

‘조국’ 때문에 조국(祖國)이 어지럽다. 검찰은 강제수사에 돌입하고 여·야 정치권은 청문회를 둘러싸고 대치 중이다. 언론은 연일 조국 후보자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대학가는 지난 2016년 10월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시위 이후 3년여만에 다시 촛불을 들었다.

뜨거웠던 한·일 갈등 이슈도, 어려운 살림살이도, 남북관계 뉴스도 갑자기 미디어에서 사라져버렸다. ‘조국 이슈’가 여론의 불랙홀이 돼버렸다.

조국 후보자의 정치적 장래는 청문회와 검찰수사를 거치면서 결정될 것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그는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고 많은 것을 잃었다. 국민은 그에게 불법이냐 아니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특권의 삶을 살아오면서 개혁의 전도사 역할을 해온 것에 대해 추궁하고 있다.

그가 비록 유능한 법학자이긴 하지만, 이 사안을 단순한 법의 문제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를 거치면 없던 정무감각도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권 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민정수석을 거치면서 정무적 감각을 키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는가?

문제는 법리가 아니라 민심이다. 생전 김대중 대통령은 “민심은 권력의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어버리기도 한다”며 민심의 양면성을 강조했다. 법전에 없는 무서운 죄가 ‘괘씸죄’라는 것이다.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작금의 사태를 보면 떠오르는 역사적 인물이 있다. 조선조 개혁의 상징적 존재인 조광조(趙光祖)다.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중종 때 사림파의 대표로 유교적 이상정치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개혁정치를 하다 훈구파의 공격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조국과 조광조는 몇가지 측면에서 닮은꼴을 하고 있다.

첫째, 그들은 사림(士林) 출신이다. 조광조는 조정에 나가기 전 부터 명망이 있는 학자였다. 그는 조선 성리학의 거두인 김굉필의 제자로 당시 사림에서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조국 역시 서울대 교수로 이름을 날리다 청와대에 들어갔다.

두번째 공통점은 급진 개혁주의자라는 점이다. 조광조는 훈구파의 전횡에 휘둘리던 중종의 필요에 의해 발탁됐으나, 당시 기득권 세력인 훈구파를 상대로 현량과 실시와 위훈삭제 등 급진개혁을 추진하다 역공을 당해 몰락했다.

조국 후보도 공격적인 개혁 드라이브 와중에 어려움에 직면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 통한의 아쉬움을 토로했던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소명의식이 그를 옥죄었다.

세번째 공통점은 그들이 너무 잘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조광조는 신언서판을 두루 갖춘 무결점 인간이었다. 학문적 깊이는 물론이고 공직자로서의 몸가짐도 반듯한 선비였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조국도 무결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잘생긴 외모, 좋은 집안 등 3박자를 두루 갖춘 '강남스타일 개혁주의자'였기 때문에 그는 단숨에 개혁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의 강렬한 메시지는 개혁세력을 열광하게 했고, 수구세력을 떨게 만들었다. 그래서 ‘조국 대망론’이 나오기도 했다.

조광조는 흔히 기묘사화를 일으킨 남곤 등 훈구파의 음모로 몰락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추락은 중종과 훈구파의 합작품이었다. 조광조의 급진 개혁정책에 피로감을 느낀 중종이 훈구파와 야합을 한 것이 기묘사화의 본질이다.

조광조는 유배지인 화순 능주에서 38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며 시조 한수를 남겼다.

“저 건너 일편석이 강태공의 조대로다

문왕은 어디 가고 빈대만 남았는고

석양에 물차는 제비만 오락가락 하더라”

중종에게 버림받고 죽임을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읊은 시에서는 미완의 개혁에 대한 짙은 회한과 권력의 비정함이 느껴진다.

조국이 조광조와 같이 회한을 남기고 좌절하는 실패한 개혁가가 될지, 온갖 공격을 이겨내고 개혁을 완수하는 성공한 개혁가가 될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은

한겨레신문 기자와 김대중 정부시절 청와대 국정홍보국장·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인간개발연구원장을 역임했다. 한양대와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중국 칭화대에서 동북아 국제관계를 연구하고 강의했다. 2017년 11월 중국 베이징대에서 ‘21세기 한중관계’를 주제로 초청특강을 하기도 했다.

※외부 필진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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