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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백색국가 한국 제외 강행] “어떤 품목 정밀타격 할지…” 재계 긴장
지소미아 파기로 불확실성 더 커져
전자·화학 등 공급선 다변화 총력

“지난 3주간(공포~시행) 일말의 관계회복을 기대했지만 지소미아 파기 등 사태가 더 악화해 일본이 언제 어떻게 추가보복할지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국내 대기업 고위 임원)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 시행 첫날인 28일, 재계는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시행과 관련해 “금수조치가 아닌 만큼 수출 절차를 제대로 밟으면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ISOMIA) 파기 등 양국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한층 커진 불확실성에 크게 긴장하는 모습이다. 일본 언론 역시 이번 조치에 대해 “일한 갈등 악화에 결정적일 것으로 보인다”며 “일한 대립이 양국 경제를 농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8일 재계와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부터 한국을 화이트국에서 배제하는 정령(시행령)을 본격 시행한다. 지난달 4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폴리이미드·불화수소·레지스트)에 이은 한국 수출규제 강화 2탄이다.

한국은 그룹A(화이트국)에서 그룹B로 강등돼 그동안 화이트국으로서 누려왔던 전략물자 일반포괄허가 혜택과 캐치올 규제 제외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군사전용 위험이 낮은 식품·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에서 일본 정부가 의심스럽다고 판단하면 개별허가 심사를 받도록 요구할 수 있다.

가장 타격을 주는 전략물자로는 반도체 실리콘웨이퍼와 블랭크마스크, 디스플레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소재인 섀도마스크, 베터리 파우치 필름 및 분리막, 탄소섬유 등이 거론된다.

특히 반도체 핵심소재인 실리콘웨이퍼의 경우 일본 신에츠화학공업과 섬코(SUMCO)가 전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점하고 있어 독일 실트로닉(13%), 국내 SK실트론(9%)이 생산량을 늘리더라도 수급 악영향은 불가피하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전체 장비의 82.9%가 일본산이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산업정책팀장은 “일본이 수출관리를 강화한다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화학 등 한국 미래먹거리를 정밀타격할 것으로 보인다”며 “칼자루를 쥔 일본이 추가 규제품목을 지정해 개별허가를 요구하면 수입이 지연될 수 있어 우리 기업들은 재고관리에 각별히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다음달 생산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에 불화수소를 수출하는 일본의 모리타화학공업은 “한국내 합작회사가 보유한 재고가 2개월치 밖에 되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에 조속한 수출허가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공급선 다변화를 위해 구매팀을 해외에 급파하고 국산 소재 등의 테스트에 돌입하는 등 비상경영을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생산 적용을 위한 검증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모든 일본산 소재를 대체할 수는 없어 원자재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결정된 직후 중간 원료와 소재를 국산과 중국산 등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강구해 왔다.

한국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기타석유화학 중간원료의 대일본 수출액 의존도는 98.8%에 달한다. 중간원료의 경우 수입금액은 1억6200만달러(1930억원) 가량으로 다른 물품에 비해 수입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곧바로 대체가 어려운 품목이라 실제 재제로 이어질 경우 생산 차질 가능성도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특히 추가 제재 품목으로 언급돼 온 배터리 파우치필름 등은 일본의 2개 회사가 글로벌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업계는 ‘핀셋’ 제재가 현실화할 경우 국산화와 대체품 확보를 면밀히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파우치필름은 파우치형 배터리 셀을 감싸는 역할을 하는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파우치형으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어 일부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일본 도레이 제품 의존도가 높은 탄소섬유 역시 제재 품목으로 거론돼 왔지만 도레이한국이 원사를 프랑스나 미국 등에서 수입해 구미공장에서 제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섬유는 수소전기차의 수소연료탱크에 적용되며, 현재 효성도 연산 2000톤 가량의 탄소섬유를 생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달 중순 일본이 반도체 공정 소재인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2차 수출 허가를 내린 것을 보고 임시 소강 국면에 돌입했다고 봤지만,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업계에 불확실성이 다시 퍼졌다”면서 “일본이 이미 한국 기업들에 타격을 줄만한 품목들을 모두 파악해 뒀다는 위기감이 파다했는데, 현재도 무거운 마음으로 화이트리스트 배제 시행을 지켜보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중소기업계 역시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일본의 수출제한조치와 관련된 중소제조업 269개사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지속될 경우 6개월 이상 감내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59%에 달했다.

일본 내에서도 이번 화이트국 배제 시행에 대한 우려감을 표하고 있다.

교도통신은 “일본이 화이트국 지정을 취소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며 “한국 정부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일한 관계의 악화에 결정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일한 대립이 양국 경제를 농락하고 있다”며 “한국에선 관광·소비의 일본 이탈이 확산하고 일본 제조업은 복잡한 수출절차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일한 대립을 틈타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며 “일한 정상은 지금이라도 과열된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중장기 국익을 고려해 대화를 피하지 말고 회담해야 한다”고 전했다.

천예선·이세진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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