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상속으로-송영훈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일본, 그리고 ‘작은 꼬마’와 ‘뚱보’의 교훈

‘작은 꼬마’와 ‘뚱보’. 1945년 8월6일과 9일 각각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이름이다. 어쩌면 순수와 유머와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는 이 단어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주민들에게는 세상에 듣도 보도 못했던 공포스런 무기의 이름이다. 이 두 곳 외에 살상용으로 핵무기가 사용된 곳은 없다.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으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무기를 개발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그 무기의 이름을 ‘작은 꼬마’와 ‘뚱보’라고 지은 것을 보면 전쟁의 승리에 대해 확신에 차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들이 만들어낸 괴물이 어떤 희생과 파괴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도 원자폭탄이 초래한 살상과 파괴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더욱이 미국 정부가 베트남과 전쟁하고 있는 프랑스 정부에게 그리고 중국의 공산당과 싸우고 있는 장제스 정부에게 수소폭탄을 제공할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인간적인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버트란트 러셀이 기초한 핵 폐기와 탈핵을 위한 공동선언문에 서명을 한다. 이 선언문은 완전한 핵 폐기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 선언에 서명한 이들은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선택이 인류의 행복과 지식과 지혜의 발전에 기여할 수도, 퇴보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행동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 8월초 한 일본 시민단체의 초청으로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완전한 철폐를 위한 동북아시아의 협력을 주제로 하는 국제학술회의에 다녀왔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한일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핵무기의 폐기 없이 진정한 평화는 이루기 어렵다는 인식에는 참가자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 청중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정책에 의존해야 하는가, 혹은 플루토늄을 보유하면서 핵 억지력을 확보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핵무기의 완전한 철폐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의아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아베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를 요청한 것이었다. 일본 정치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에 정책적 평가를 하기는 어렵지만 반문하는 것은 가능했다. 핵폭탄의 피해를 보고도 핵무기의 유용성을 믿을 수 있는가.

2000년대 초반 핵확산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모든 국가가 핵무기를 가지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은 역시 핵무기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또는 사용 가능한 무기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정말 우리는 74년 전 그 때의 폭탄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 무기들을 실제 사용할 의지가 있는가? 핵무기를 가지고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군사적 분쟁을 멈추지 않았던 것을 보면 핵무기를 가진다고 평화가 이뤄지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분명 세상 어디에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도시의 사람들보다 더 핵무기에 의한 피해에 민감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No More Hiroshima’와 ‘No More Nagasaki’를 외치고 있다. 이들의 아픔은 아무리 위로하더라도 역사 속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고 인류에게 경종을 울려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아픔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쟁을 하지도 않았다면 원자폭탄의 피해는 없지 않았겠는가. 그러기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시작되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철폐를 넘어 세계의 무력 분쟁의 금지를 위한 연대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모든 형태의 무력분쟁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역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그것도 반복해서 말이다. 역사의 과오를 반복해서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은 그 책임을 혼자 떠안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대를 넘어 경계하자는 연대의 메시지인 것이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