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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 냄새에 끌려 빵을 산적 있나요?…소비를 뺏기지 않을 권리
주목하지 않을 권리/팀 우 지음/안진환 옮김/알키

마트의 계산대 바로 옆에는 달콤한 사탕과 초콜릿 등이 눈길을 사로잡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시식행사는 코를 자극한다. 여기에 빵과 커피의 구수한 향까지 더하면 도저히 발길을 돌릴 수 없다. 똑똑한 소비자들은 그 이유를 알면서도 감각의 충동에 무릎을 꿇고 손을 뻗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비사회에서 사게 만들려는 자와 안 사려는 자와의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망 중립성’이란 용어를 만든 IT기술분야의 석학 팀 우드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는 역작 ‘주목하지 않을 권리’(알키)에서 개인의 삶 속으로 거침없이 파고드는 주의력 끌기 산업에 맞서 자신의 삶을 뺏기지 않을 권리 회복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누군가의 주의를 사로잡으면 지갑을 열 수 있다는 믿음의 실체인 광고는 자본주의 발달과 궤를 같이한다. 주의력을 되파는 작업을 비즈니스모델로 처음 적용한 신문은 1833년 벤자민 데이가 설립한 ‘뉴욕선’이었다. 데이는 당시 6달러 하던 신문을 1달러에 판매하고 광고로 수익을 얻는데 성공했다.

1860년대 파리에 등장한 쥘 세레가 처음 선보인 화려한 색감의 역동적인 대형 포스터는 주의력 끌기 산업의 바통을 이어갔다. 전혀 새로운 신기한 포스터는 시민들을 열광시켰고 포스터 예술가들을 만들어낸다. 그 가운데엔 순수미술가로도 잘 알려진 로트렉도 있었다. 그러나 파리가 포스터로 도배되면서 반발 운동이 일어나 규제법이 생겨나게 된다. 아름다운 도시 파리는 바로 오랜 규제의 결과다.

주의력 환기산업의 핵심인 광고산업은 20세기초에 날개를 달게 된다. “놀라운 통증 제거 약물”이라며 치료를 약속한 ‘클락 스탠리의 스네이크 오일 연고’,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선전된 제임스 카드 박사의 특허의약품 광고문은 오늘날 의약품, 화장품 등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때 전국적인 규모의 광고 플랫폼으로 우체국의 배달 시스템이 이용되고 팸플릿, 무료샘플이 선전의 도구로 등장한다.

저자는 소박한 구인광고를 내던 시절부터 텔레비전 시대에 가정으로 들어온 광고와 SNS와 앱시대에 손안으로 들어온 광고까지 광고산업의 주의력 끌기의 변화과정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펼쳐가며, 매체가 변할 뿐 반복·진화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과도한 관심끌기는 한편으론 대중의 각성과 반란을 일으켰으나 광고산업은 그때마다 대중이 각성할 임계점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책은 미디어발전사라도 해도 좋을 만큼 전통적인 미디어부터 페이스북, 유튜브, 넷플릭스의 뉴미디어의 탄생과 발전과정을 흥미롭게 아울러낸다.

이 책의 주목할 만한 성취 중 하나는 주의력 끌기의 한 형태로, 20세기 이래 광범위하게 개인에게 영향을 미쳐온 국가의 선전·선동을 살핀 데 있다.

제1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동원한 대국민 모병운동은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선전한 첫 사례다. 영국은 호소문과 영상·포스터 등을 동원, 법적 강제가 아닌 선전 설득을 통해 모병에 대대적인 성공을 거둠으로써, 이후 여러 국가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미국은 영국의 사례를 더욱 발전시켜, 모든 매체와 기술을 적용, 참전의 당위성을 얻는데 놀랄만한 성공을 거둔다. 저자는 이를 통해 대중이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는 틀인 흑백논리의 고정관념과 이를 이용하는 ‘여론’‘조작 가능성, ’반역‘ 프레임까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갈등의 시원을 보여준다.

저자는 광고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아니면 필요악인지는 접어두고, 주의력 산업이 개인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정 시간을 따로 떼어내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거나 플러그 뽑기, 디지털 안식일 등을 갖는 것이 삶을 지키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우리 삶의 경험은 생이 끝나는 시점까지 선택에 의해 그랬든 무심히 그랬든 주의를 기울였던 모든 것과 동등하다”고 설파한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의 말은 날카로운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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