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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는 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 하나
전쟁책임·위안부 문제 회피하는 우파세력
민주주의라는 도금으로 제국주의 본성 덮어
아베 정권 ‘국가우선주의’ 교육 강화
일본 국민 다수의 순응·동조 우려
책임에 대하여/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지음/한승동 옮김/돌베개

‘한일관계는 회복불능 상태다.’

이는 반도체 규제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이미 예견됐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와의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돌베개)서문에서, 매파 아베 정권의 목표는 근대 일본제국주의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것이어서 한국과 부딪힐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아베 정권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이런 정책을 펴는 게 아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을 수 밖에 없다.

지난 20여년간 일본사회의 우경화와 역사인식 결여를 지적·비판해온 두 저자는 이번 책에서 다시금 역사적 책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서 교수는 현 일본사회를 한마디로 ‘엽기적인 사회’로 규정한다. “나치스의 수법을 배워서” 헌법 개정을 하자고 일본의 부총리가 말하고 총리는 (원전사고는) “통제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해도 용인하고 환영하는 기괴한 사회라는 것이다.

다카하시 교수는 이런 흐름의 형성을 1990년대 후반 역사수정주의의 등장에서 찾는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첫 증언으로 일본 정부의 전쟁 책임론이 대두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되레 보수세력과 미디어를 중심으로 반동 캠페인이 일면서 여론은 보수화된다.

90년대 후반은 우파의 반발이 맹렬했던 시기로 불린다. 역사 교육 분야에서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까지 우파 세력이 확대되고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전쟁론’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 책임을 부인하려는 경향이 거세진다.

여기에 ‘1999년 문제’로 불리는 아시아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온 일장기 히노마루, 국가 기미가요를 법제화한 ‘국기·국가법’을 비롯, ‘주변사태법’ ‘도청법’등이 제정되면서 제국의 연장선으로서의 일본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게 된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 국수주의가 더욱 기세등등해진다. 일본사회의 양극화 심화의 틈을 타 국수주의가 담론을 지배하면서 완전 정착한다.

2006년 제정된 ‘교육 기본법’ 제정은 아베 정권의 목표인 ‘전쟁할 수 있는 나라’ 만들기의 밑작업이라 할 만하다.

“아베 정권은 (…)일본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아 민주적으로 존속하고 있다. 거기에는 (…)일본 제국 시대 이래의 ‘본성’이 존재하며, 그에 덧붙여 글로벌화 속에서 하락중인 일본의 지위와 국력에 대한 불안이 작용한다.” (‘책임에 대하여’에서)

다카하시 교수는 “또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자신의 목숨을 국가에 바치는 것을 국민의 모범으로서 현창하는 야스쿠니신사의 부활과 병행해서, 국가를 떠받치는 국민의 마음을 고취시키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며, 운동단체와 함께 반대운동을 펼쳤지만 법률은 개정됐고 교육현장에 대한 단속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다카하시 교수는 응당 이뤄졌어야 할 책임에 대한 ‘응답’의 회피 결과, 최악의 보수정권이 그것도 장기집권으로 자리를 틀게 됐다고 지적한다.

다카하시 교수는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제강점기 하 일본군 성노예에 대한 천황과 일본군부의 책임을 인정한 여성국제전법 법정에서 위안부측에 서 일본의 책임 논리를 제공해온 철학자다.

당시 NHK는 처음으로 일본의 전쟁책임을 인정한 이 판결과 관련, 다카하시 교수를 기획위원으로 특집 시리즈를 만들었으나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아베 총리의 압력으로 방송이 수정되는 일을 겪게 된다. 이 일은 일본 미디어 전체가 위축되는 분수령이 된다.

저자들은 위안부 문제와 오키나와 미군 기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천황제의 모순을 두루 살피면서 일본이 쓰고 있는 가면과 본성을 파헤친다. 저자들은 전후 일본은 민주주의라는 도금으로 식민주의, 민족주의, 제국주의의 본성을 덮고 있다고 지적한다.

히로히토 천황과 관련, 일본 언론이 보여준 태도는 과거사 인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당시 언론은 히로히토가 평화주의자였고 전후 일본의 혼란을 수습하는데 기여했다며, 전쟁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자들은 페미니즘에 기댄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와 ‘화해를 위해서’에 열광한 일본의 리버럴파 지식인들의 무책임한 태도도 비난한다. 위안부 피해자 중 일부가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과 다르더라도 전범의 책임은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다.

본질을 꿰뚫어내는 저자들의 깊은 논의가 오키나와와 후쿠시마로 연결되는 지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본 본토 방어용 미군기지를 오키나와에 몰어넣고 외면한다든지,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원전에서 일어난 사고로 엄청난 희생을 당한 후쿠시마에 대한 외면은 위안부와 징용 노동자를 외면하는 방식과 같다는 게 저자들의 인식이다.

“책임의식이 희박하거나 부재하는 문제는 개인 의식의 미발달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일본 국민 다수의 대세 순응주의나 동조주의의 심성을 의식 깊숙한 곳에서 규정”하게 된다. 이는 천황제와 깊이 연관된다.

책은 겉으로는 유럽식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면서 속으로는 천황제를 중심한 일본식 보편주의를 강화하고 있음을 일관되게 지적하는데, 우리 안의 국수주의와 리버럴리즘, 식민지 지배자로서의 일본과 근대화 모델로서의 일본을 어떻게 극복해야할지에 대해서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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