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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친일, 반일, 극일을 다시 생각함

일본산 불매 운동은 ‘반일’이고,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처하는 정부의 정책 목표는 ‘극일’이며,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친일파’가 배회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권에선 여야가 서로를 ‘친일파 후손’ ‘토착왜구’라고 손가락질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됐고, 거리에는 각 지역구의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의 극일을 내세운 플래카드가 걸렸다. 여의도에서도 여야 가릴 것 없이 위험 수위의 감정적 발언들이 쏟아진다. 이쯤되면 ‘반일’ ‘극일’ 마케팅이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에 대한 긴급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 “우리는 충분히 일본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극일’이 사실상 정부 정책의 가치 지향 중 하나로 대통령의 입을 통해 공인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조금 더 들여다본다면, ‘극일’ 기조를 담은 두 세 문장이 전체 발언 맥락과 매우 부조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문의 요지는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보복이며, 이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 국제법 대원칙, 자유 무역질서의 심각한 위반이다. 한국은 대화와 외교적 해법만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를 거부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오로지 일본의 책임이다. 우리 한국은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맞서 대응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힘을 더욱 키울 것이다” 이다. 즉 일본의 조치는 한국을 이겨보겠다고 해서 부당한 것이 아니라 인류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낫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 명징하게 담겼다. 국민들에게 국난 극복의 의지를 더 강력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상황은 십분이해가 가지만, 이를 전체 맥락까지 왜곡할 수 있는 극일의 표현으로 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인류와 국제사회 보편적 규범과 정의에 호소하면서 ‘일본을 이기자’고 선언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각국이 가진 ‘비전(vision)의 각축’이라고 할 것이다. 국제사회, 글로벌경제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는 시기, 각국의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목표와 전략이 한반도에서 충돌하고 있다. 미중 간 경제-안보 전쟁, 남북미의 비핵화 및 평화 협상, 한일간의 갈등 모두 같은 맥락이다. ‘아메리칸 퍼스트’, ‘중국몽’, ‘전쟁가능한 나라’는 각국 비전의 단적인 표현들이다. 우리의 비전은 무엇일까. 여러 논의와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극일’로 제한될 수는 없다는 점만은 명확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특정 국가에 대한 반작용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그렇게 돼서도 안된다.

그래서 국민들의 일본산 불매운동은 ‘반일’을 넘어 ‘정의의 요구’로 이해돼야 마땅하다. 전쟁범죄 응징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민의의 표현이다.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정부의 대응 역시도 국제법과무역 질서 위반에 대한 단호한 대처로 이해되고 실행돼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정부가 추구할 것도 ‘극일’이 아닌 ‘자강’이다. ‘친일’은 아직도 온전히 평가되고 청산되지 못한, 일제 식민지 시대 반국가적,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엄중한‘역사적 규정’이지, 지금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희화화될 개념은 아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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