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韓 독도 방어훈련 재개…한일 갈등 고조 기류
집안 곳곳에 있는 일본 제품들[사진=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rp.com] |
[헤럴드경제=성기윤 기자] ‘여기는 없겠지…’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집안 곳곳에는 일본 제품들이 어김없이 튀어나왔다. 일본 제품 ‘청정구역’은 없었다.
점점 심해지는 한일 경제 갈등 기류를 타고 한국의 주요한 대응책인 '일본불매' 운동이 멈출 줄 모르는 형국이다. 일본 제품을 알리는 ‘노노재팬’ 홈페이지에는 150여개의 일상 속 일본 브랜드와 그 대체상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각종 SNS에는 상품 바코드 검색 등 각종 일본 제품을 확인하는 방법들이 업데이트 되고 있다.
기자는 얼마나 많은 일본제품들이 일상생활을 점령하고 있는지 집 안을 점검하기로 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신채호 선생이 말했다던가.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받는 월급이 얼마나 일본으로 들어갔는지 두 눈으로 확인한 결과,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기자의 집은 침실과 옷 방, 거실, 부엌, 욕실로 이루어진 1인 성인 자취 남성의 평범한 집이다. 취업이라는 좁은 관문을 비집고 들어오는데 성공한 후에 ‘나의 공간’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이사를 하면서 이것저것 들여놓았다. 월급쟁이로서의 삶을 마음껏 누리겠다는 당당한 포부와 함께 마음껏 긁어댄 신용카드의 쓰라린 흔적들이 집안 곳곳에 배어 있었다.
먼저 침실을 점검하기로 했다. 침대와 탁자, 러그만 있는 미니멀리즘 침실은 당연히 ‘무사통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 생각 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 찰나 침대 시트가 눈에 들어왔다. 대표적인 일본브랜드인 ‘무인양품’ 제품이었다. 감촉이 좋아 숙면에 도움되길 바라는 마음에 구매했었다. 첫 관문에서부터 고배를 마신 기분으로 다음 방으로 이동했다.
옷 방과 서재를 겸하는 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입사 후부터 계속 쓰고 있는 ‘기자 수첩’이었다. 수첩도 무인양품 제품이었다. 현장에서 써본 결과 크기나 필기감 등 여러 면에서 좋아 쟁여놓고 쓰고 있었다. 아직 가격표도 뜯지 않은 새 기자 수첩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책상 한 켠에 쌓여있었다. 필기감이 좋아 산 볼펜들에도 ‘made in Japan’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오래전에 사놓은 캐논 카메라도 있었다.
화장품들 사이에서도 일본제품들은 어김없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이 들면서 뭐라도 챙겨야겠다 싶어 하나 둘 사 모은 화장품이 즐비하게 늘어선 서랍 위에 자리잡은 일본 브랜드인 ‘시세이도’ 제품에는 제조원의 일본 주소까지 상세히 적혀있었다. 대한민국 어느 집에나 한 벌은 있을 유니클로 의류들도 옷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최근 일본 불매운동 열풍으로 유니클로는 최근 2주 사이 매출은 30% 가까이 감소했으며 시세이도와 SK-Ⅱ등 일본 화장품들도 백화점 등 일부 유통 매장에서 작년 동기 대비 20% 가량의 매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제품 불매 사이트인 '노노재팬' 홈페이지[사진=인터넷 캡쳐] |
패배감에 젖어 거실로 향했다. 가전에는 일본제품이 없었다. 식기 세트도 ‘다행히’ 중국산이었지만 복병은 있었다. 중국 제품들 사이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하얀색 접시가 눈에 띄었다. 기자수첩과 같은 브랜드에서 산 제품이었다. 얼마 전 한국에 상륙해 붐을 일으킨 ‘블루보틀’ 커피잔도 당시에는 한국에 없었던지라 친구가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다준 제품이었다.
폭격을 맞은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현관 신발장이었다. 대부분의 신발이 일본 자본으로 만들어진 ‘에이비씨마트’ 출신이었다. 러닝하기에 좋다는 ‘아식스’ 제품은 발에 꼭 맞는 제품을 사기 위해 힘들게 돌아다녀 얻은 결과물이라 볼 때마다 뿌듯했지만 이제는 천덕꾸러기 같아 보였다.
마지막 공간인 욕실(폼클렌징)까지 점령한 일본 자본으로부터 ‘청정’한 구역은 집에 한군데도 없었다. 열심히 번 돈은 야금야금 일본으로 가고 있었다.
‘한일 경제전쟁’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일본이 지난 2일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간소화 우대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한다고 발표하자 여론은 비판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정부는 그간 미뤄온 독도 방어 훈련 재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경제 갈등이 서로 맞대응을 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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