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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0년 서울 명물’ 충무로 인쇄골목
비좁은 골목골목 영세한 업체
귀돌림·타공 등 철저히 분업화
살아있는 인쇄박물관 명성
서울시 ‘다시·세운…’ 구역에
창작 인쇄업 거점공간 조성
충무로 인쇄골목의 ‘필수 아이템’ 삼발이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있다. [서울시 제공]

‘귀돌림, 타공, 오시…’.

지난 26일 찾은 서울 중구 마른내 4길. 한 가게 유리문에 의미를 알 듯 모를 듯한 낱말이 적혀있다. 야트막한 높이에 10평 남짓한 크기의 이런 영세 가게들이 골목 양편으로 오밀조밀 붙어있다. 성인 두명이 간신히 지날수 있을 만한 비좁은 골목은 구불구불 어지럽게 이어졌다. 마치 1970년대 거리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온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이런 감상을 깨운 건 골목을 수시로 오가는 ‘삼발이’ 오토바이 소음이었다.

삼륜 오토바이는 이 곳 충무로·을지로 인쇄골목에서 없어선 안될 운송수단이다. 업체는 모두 분업화, 전문화 돼 있다. 명함만 제작하거나 금박만 입히는 식이다. 삼발이 오토바이는 인쇄 공정의 단계 마다 필요한 가게를 찾아 다니며 작업 물량을 실어나른다. 귀돌림은 제지의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하는 것, 타공은 구멍내는 일, 오시는 종이가 잘 접히도록 누름선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까 가게 문에 귀돌림, 타공, 오시라고 붙여놓은 건 그 업무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란 뜻이다.

흔히 충무로를 영화의 거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거리의 터줏대감은 인쇄다. 시초는 600여년을 거스른다. 지하철 충무로역 인근 남산스퀘어(충무로 3가 60-1) 빌딩 앞에 세워진 ‘주자소(鑄字所) 터’ 표지석으로 유구한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주자소는 조선시대 활자를 주조하고 책을 찍어내는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이다. 1403년 태종이 고려말기 서적원 제도를 이어받아 지금의 충무로 지역에 주자소를 설치했다고 전해진다.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인근 필동과 광희동까지 아우르는 인쇄산업특정개발진흥지구(30만㎡)에 서울 전체 인쇄업의 67.5%가 자리해 있다. 특구 내 인쇄 관련 업체는 5500여곳, 종사인원만 1만2000여명이다. 낡은 흑색사진 속 풍경 같은 충무로인쇄골목은 한때 개발논리에 치우쳐 한꺼번에 밀려버릴 위기도 있었지만, 실상 4~50년 된 장인들의 생업 현장이자, 창작물의 생산기지로서 미래 세대의 독립출판과 디자인의 꿈이 영그는 자리인 것이다. 이 날 기자와 동행한 이 란 서울시 ‘지붕없는 인쇄소’ 소장은 “이 곳을 다녀가는 많은 분들이 ‘이걸 없애는 건 정답이 아니지 않느냐’고 한다”면서 “이 곳은 ‘책 만드는 마을’, ‘장인의 마을’로서 산업 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살아숨쉬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서울시는 ‘다시·세운 프로젝트’ 2단계 구역으로서 내년 4월까지 진양·인현상가에 보행데크를 신설하고,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창작인쇄업 거점공간을 마련한다. 앞서 지역민의 소통공간으로서 진양상가에 ‘지붕없는 인쇄소’를 뒀다. 1인기업 입주공간, 샘플작업실, 교육시설 등을 집약한 핵심거점인 ‘인쇄 스마트앵커’를 새롭게 건립하고, 인쇄 관련 스타트업 입주공간인 ‘창작큐브’를 설치한다. 일자리?살자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청년주택도 400가구를 공급한다. 진양상가에는 책을 내고 싶은 독립출판작가와 세운상가 일대 인쇄업체가 만나 협업하고 독자들은 독립서적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인현지하상가에는 인쇄기술학교, 공방, 인쇄박물관 같은 시설이 각각 들어선다.

지난해 9월 세운상가~청계?대림상가가 공중보행교와 보행데크로 연결된 데 이어, 내년에는 대림상가를 넘어 삼풍상가를 지나 퇴계로와 맞닿은 진양상가까지 총 1㎞에 걸친 세운상가군 7개 건축물 전체가 보행길로 연결된다. 종묘에서 시작해 세운상가를 거쳐 남산까지 이어지는 서울의 남북 보행축이 완성되는 것이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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