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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마음을 어떻게 ‘먹나요?’

이어령 교수는 자신의 저서 ‘디지로그’의 첫 페이지에 ‘한국인은 무엇이든지 먹는다’고 적고 있다.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지만,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은 돈도 먹고, 욕도 먹고, 때로는 참피언도 먹는다. 축구경기에서 골을 잃을 때도 한골 먹었다라고 표현한다. 심리면에서는 겁먹고, 애먹는다. 경제면에서는 경비가 얼마 먹혔다고 표현한다. 사회적으로, 사횟물을 먹기도 한다. 심지어 남녀관계에서는 ‘따먹었다’라는 저속한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방학을 맞아 언어연수를 온 외국인이 한국인들은 마음까지 먹는데, 마음을 어떻게 ‘먹는지’를 질문해왔다. 결심(決心, Decision)의 의미라고 알려주었지만, 사전적인 객관적이고 건조한 의미를 물은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 표현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우리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마음을 먹는 것 같다.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이미 만들어진 자신의 형태가 스스로 용납되지 않거나 더 이상 수용이 불가능 할 때, 우리는 자신을 바꾸고자 마음을 먹는다. 어떤 형태로건 자신을 바꾸어놓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조현용 씨의 ‘우리말 깨달음 사전’에서는 결심을 ‘마음을 몸속에 담는 일’이라고 풀이를 해놓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표현이다. 마음을 몸속에 담는다는 것은 씨앗을 심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마음이 당장 나의 상태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단 심고 나서, 물을 주고 햇빛을 충분히 공급하면 자라날 수 있음을 말한다. 여기에는 인간이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믿음이 들어있다. 현재의 나와 다른 나를 만들려고 할 때 갖는 마음과 이어진 행동이다. 죽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 결과는 어떨까. 몸속에 어떤 마음을 담느냐에 따라 나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을 아는 지혜가 이 표현 속에 들어 있다.

그런데 마음을 먹는 것이 단지 한 개인의 변화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인간관계가 동태적인 만큼 내가 마음을 먹으면 상대방도 달라지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그래서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나라와 나라 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25일 일본의 교수, 변호사, 언론인, 시민단체 활동가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번에 한·일 쌍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일본 시민으로서 일본 정부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 성명은 자국의 한국에 대한 “적대적인 행위”에 대한 반성은 물론, “일본과 한국은 중요한 이웃국가로, 서로 떨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직된 양국의 관계는 기성(旣成)의 형태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상태까지 도달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누구나 느끼겠지만 해결책을 찾기는 싶지 않다. 양국의 갈등들은 대부분 연쇄적으로 나타나 증폭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정체를 넘어 퇴보하는 양상을 띠는 것은 어떤 정책이나 시스템적 보완만으로 해결이 어려움을 시사한다. 국가도 상태의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마음을 먹어야한다. 일본의 지식인들이 그것이 무엇인지를 겸허하게 보여준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중요한 이웃국가”라는 인식을 ‘먹은’ 것이다. 마음의 씨가 막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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