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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최석호 서울신학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궁했으므로 맑고 밝았다
지난 2010년쯤으로 기억한다. 전남 도청에서 근무하는 최석남 사무관의 간청에 못 이겨 남도를 찾았다. ‘강진에서 다산 정약용을 만나고 진도에서 소치 허련으로부터 4대를 거쳐 이어진 화맥을 감상하겠구나!’ 지레 짐작하고 나섰다. 생애 첫 남도행이다. 깜짝 놀랐다. 망미정에서 문곡 김수항이 쓴 시를, 물염정에서 농암 김창협이 쓴 시를, 송석정에서 삼연 김창흡이 쓴 시를 읽었다. 모두 화순에 있는 정자에 게액 되어 있는 시다. 목포에서는 더 놀랐다. 추사 김정희가 자신의 인생을 “생애일편청산 청명재궁”(生涯一片靑山 淸明在窮)이라 표현한 두 폭 병풍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성옥기념관 제2 전시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노완(老阮)이라 새긴 인장을 찍은 걸로 봐서 추사체를 완성한 뒤에 쓴 글씨가 분명하다. 추사의 당호가 완당(阮堂)이었던 점에 비추어보면, 노완은 ‘완당에서 추사 노인이 썼다’는 뜻이다. 추사는 자신의 생애를 청산(靑山)에 비유했다. 그런데 두 글자를 마치 한 글자처럼 썼다. 연이어 써 놓으니 직(直)자와 매 한가지다. 곧고 푸른 인생이었다는 뜻이다. 이어서 ‘곧고 푸른 삶’을 산 비결을 ‘궁했으므로 청명, 즉 맑고 밝았다’(淸明在窮)는 데에서 찾는다. 1년 12달을 둘로 쪼개면 24절기가 된다. 24절기 중 소한·대한·입춘·우수·경칩·춘분·청명·곡우 등 8절기는 15일마다 한 번씩 120일 동안 차례로 온다. 청명(淸明)은 꽃 피는 8절기 중 일곱 번째다. 온 세상이 맑아지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인생이 그와 같았다는 뜻이다.

추사이곡병에서 핵심은 궁이다. 추사는 당연 경전에서 따 온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맹자(孟子)가 송구천(宋句踐)에게 “남들이 나를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덕과 의를 쌓아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일렀다(孟子 盡心章句 上 第9章). 덕과 의를 쌓는 방법은 궁(窮)한지 아니면 달(達)한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궁하면 자신을 착하게 하고, 달하면 백성까지 착한 데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덕과 의를 쌓을 수 있다. 맹자는 선비(士)를 일컬어 궁이라 했고, 대부(大夫)를 일컬어 달이라 했다.

추사는 관직에 나아가지 아니한 선비로, 궁하게 살면서 이름을 깨끗하게 했다. 궁(窮)의 뜻 몸 신(身)을 소리 활 궁(弓) 뒤로 숨겨서 썼다. 궁의 갓머리는 집이라는 뜻이다. 지붕 아래 오른쪽 담벼락을 길게 늘여서 썻다. 그 왼쪽 몸 신은 곧게 썻다. 몸 신 아래는 마치 양반 다리 같다. 제주에 위리안치 된 추사가 벽에 바짝 붙어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책을 읽고 있다. 궁한 선비다. 그림으로 읽어 보면, 궁자는 영락없는 얼굴 옆모습이다. 갓머리는 상투다. 상투아래 눈섶은 양쪽 끝이 축 쳐졌다. 몸 신과 위치를 바꿔서 왼쪽 앞으로 나온 활 궁은 마치 수염처럼 둥글게 말려올랐다. 서귀포와 북청 유배를 오가며 늙어버린 추사를 보는 듯하다. 글자로 읽든 그림으로 보든 뜻으로 새기든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 뒤로 틈만 나면 남도를 찾는다. 혼자 가기도 하고, 벗하여 가기도 하고, 걷기여행객들과 함께 하기도 한다. 또 다시 여름휴가다. 바다나 계곡도 좋다. 올해에는 전시관을 찾는 것이 어떨까?! 자녀들과 함께라면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이 좋겠다. 불과 15분 거리에 플레이도시가 있다. 춘천시 초입에 김유정문학촌에 들른 뒤 의암호를 한 바퀴 돌면 애니메이션박물관과 강원화목원으로 이어진다. 부산시는 예술로 물들었다. 부산박물관에서는 제2회 신수유물전을 열어서 ‘이야기가 있는 민화, 효자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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