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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결혼 하면 1000만원?’…매매혼 권하는 지자체
35~50세 미혼 남성에 지원
‘부작용 외면’ 1회성 현금지원만
국적넘어 국제결혼 피해 속출
이주여성 인권보호 중점 두고
자녀 교육 등 근본대책 절실


“현금이고 뭐고 다 필요없어요. 제대로 된 결혼중개가 이뤄지는지를 좀 봐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국제결혼 피해자 46세 이 모씨)

2000년대 초중반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 일환으로 시작된 국제결혼은 이제는 각 지방자치단체별 ‘인구 늘리기’ 방편으로 선호되고 있다. 지방 중소 지자체는 인구 감소가 수십년째 이어지면서 자칫 행정 단위 소멸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들은 국제결혼을 할 경우 돈을 지급하는 지원책을 펴고 있다. 문제는 단순 현금지원으로 이뤄지는 결혼은 ‘매매혼’에 가까운 결혼 양태를 낳고, 이는 국제결혼 때문에 파생되는 여러 문제점의 시발점이 된다는 점이다. 현금 지원외에 교육 등 근본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는 10여년 넘게 이어져 왔다.

헤럴드경제가 전국 지자체별로 국제결혼에 따른 지원 자격과 지원 액수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 해당 지역에서 1~3년 이상 거주한 35~50세 남성에게 500~1000만원 내외의 국제결혼 비용을 지원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도 양평군은 지난 2009년 관련 조례를 만들었다. 초기에는 현금지원 상한이 700만원이었지만 현재는 1000만원으로 인상됐다. 양평군에 3년 이상 거주한 35~50세 미혼 남성 중 농업경영체 등록이 돼 있으면 지원받을 수 있다. 다른 곳과 달리 지원금 지급에는 ‘필수교육 이수’라는 항목이 더 붙어있지만 교육은 불과 8시간만 진행된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례에도 시 관내에 거주하는 만 35세 이상 50세 미만의 미혼 농업 종사자에게 1인 1회에 한하여 500만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결혼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충북 괴산군은 군내 거주 미혼자가 부부간 연령 차이 20년 이하 외국인과 국제결혼을 하고, 혼인신고일 기준 1년 이내 관할 읍·면사무소를 방문해 신청하면 5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한다.

이같은 지자체의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조례 제정은 2006년 경상남도에서부터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됐다. 당시 하동군, 남해군 등이 앞다퉈 국제결혼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지원에 나섰다. 당시 지자체는 결혼비용 지원을 위한 예산이 국제결혼가정의 사회통합을 위한 지원예산의 10배에 달하는 곳도 나타났다.

사업이 시행된지 10년도 더 넘게 일회성 현금 지원 중심의 결혼지원책은 바뀌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인천·경기·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 등 9개 시도 지자체에서 수백만원에 달하는 현금 지원 사업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등에 따르면 지자체 조례를 통해 국제결혼 지원금 제도를 명시화 하고 있는 지자체는 ▷경기도 양평·남양주 ▷인천광역시 강화·옹진 등 ▷강원도 고성·동해·삼척·양구·양양·원주 등 ▷충청도 괴산·보령·부여·단양 등 ▷전라도 강진·구례·나주 등 ▷경상북도 청송군 ▷경상남도 진주·합천·창녕·함안 등이다.

전문가들은 국제결혼 피해사례가 성별과 국적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상황에서 돈을 지급해 결혼을 시키는 지자체의 결혼 정책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센터 대표는 “결혼을 해서 시골에 정착한 이주여성들도 결국에는 도시로 가고싶어 파경에 이르는 경우가 생긴다. 나라에서 산업화 과정에서 농어촌을 희생시킨 결과를 이주여성의 희생으로 메꿔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농어촌 결혼 문제는 농어촌을 어떻게 하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지 고민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지자체들은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결혼한 사람들이 실제로 잘 살고 있는지,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점검이나 모니터링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일회성이나 시혜성 사업을 지양하고 다문화가족의 역량 강화를 비롯해 결혼 이주여성 인권이 보호될 수 있게끔 사업추진이 필요하다는 공문을 2018년 1월에도 보냈다”며 “지자체 예산과 조례로 운영하고 있어 현금성 지원책에 대해 강제력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유진 기자/kaca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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