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현장에서] 강제징용 판결, 日보복 원인 아니다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해도 외교문제로만 번지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지난해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당시 일본 외교관이 건넨 말이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부품에 대한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내들자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 새삼도마 위에 올랐다. 한 부장판사는“ 외교적·정책적 방법으로 문제 해결할 시간을 벌어준 측면이 없지 않다”며 청와대와 대법원의‘ 밀회’를 정당화했다. 국제법학자들도 비판을 이어갔다.

그러나 위 일본 외교관의 발언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문제는 대법원의 판결이 아니다. 일본 정부조차‘ 한일청구권 협정이 국내법적(한국법적) 의미에서 청구권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1991년 8월 당시 야나이 순지 외무성 조약국장은 이같은 답변서를 일본 의회에 내놓았고, 고노 다로 현 일본 외무상도“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청구권을 포함한 재산 문제는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이 끝났다”고 말했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협정체결을 통해 해소됐다는 한일간 인식을 행정부가 인정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자면 법적 권한과권한이행 방식을 구분해서 이해하고 있다.

오히려 원인은 일본의 혼란스런 메시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이번 무역규제가 보복조치가 아니라, 한일 신뢰붕괴에 따른 조치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일 신뢰 붕괴의 근거로는 대법원 판결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 및 조치, 대북제재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 등이 거론됐다. 한 일본 당국자는“ 위안부 문제도, 강제징용 문제도, 일본 차원에서는 나름의 절충안을 마련하려고 했고 정부에 제안도 했다”며 “그러나 나름 절충안이었던화해치유재단은 해산됐고,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양자협의 제안도 한국정부는 처음에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법원 판결보다는 그동안 누적된 한국정부와의 소통문제 등이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대법원 판결이 그간 정부가 받아들였던‘ 1965년 체제’의 모순을 꼬집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일본의 무역보복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일본의 보복조치는‘ 특수하다’던 한일관계를 공식적으로 무너뜨리는 강제외교이기 때문이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전후체제’는 이미 동남아시아 국가 등 과거 식민지배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계기로 모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정부가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면 대법원판결을 이유로 대외적 입장을 변경하기는 어렵다. 조약은 국제·국내법적효력을 발휘한다. 이를 부인하는 건국제법 위반이 된다. 또, 국제사회에서의 신뢰상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일 양국이 진정한‘ 특수한 관계’라면 대법원 판결 하나로 파탄날리 만무하다. 한일 양국은 적극적인 외교적 해결노력과 국내여론 설득작업을 병행했어야 했다. 대법원 판결하나로 무너질 외교관계는‘ 특별하다’고 할 수 없다. 파탄난 한일관계를 회복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협력모델을 찾아야 한다.

어쨋든 한일관계에 강수를 둔 건 일본이니 강경대응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목표가 무역보복조치 철회라면 강경대응은 효과적인 대응이 되기 어렵다. 한일관계를 다시 특수관계로 재설정해야 하는 만큼, 한일 정부가 협력기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3권분립을 강조하는데 그칠 게 아니라 조화시킬 필요성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식민지배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문제를 행정부가 중재해도 되는지에 대한 국민인식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정부권력은 지도 위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 인권의 배척점에 서있다. 사법부는 이러한 정부권력을 견제해 지도 위에 있는 사람을 세우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외교정책은 국가뿐만 아니라 국민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영미권 국가 등이 사법부가 외교부의 입장을 존중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견지하고 법정 조언제도를 두고 있는 이유다.

문재연 사회섹션 법조팀 기자 munja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