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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경제보복]3대 소재 물량 확보 안전 수준인가
-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 1~3개월치 재고 물량 확보
- 수출 규제 장기화하면 공장 중단 가능성도
- 대체재 모색 등 추가 재고 확보 위한 자구책 모색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가 장기화 조짐을 보임에 따라 규제 대상에 오른 3대 핵심 소재의 안정적 수급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가 소재·부품 개발에 매년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생산 라인을 가동하고 있는 기업들로서는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단기 대책이 마땅치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일본 출장 또한 핵심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대체재 마련 등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한 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의 대응도 임시책에 불과한 만큼 정부 간 협상을 통해 조속히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5일 재계와 관련 기관 등에 따르면 일본이 지난 4일부터 수출 규제를 강화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이다.

이들 소재는 일본이 전 세계 시장에서 70∼9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절차 간소화를 인정해 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함에 따라 일본 정부가 이들 소재의 수출을 허가하는데 약 90일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그 시일이 지나더라도 허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이들 핵심소재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결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해당 기업들은 현재 1~3개월의 재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 제조의 핵심 원재료인 포토레지스트와 에칭가스는 고성능 제품이 대부분 일본산이다. 반도체 웨이퍼 위의 실리콘에 미세한 회로 패턴을 그리는 데 쓰이는 감광액인 포토레지스트은 미세 공정에 기술력이 뛰어난 일본산이 주로 사용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도 에칭가스 생산은 가능한데 일본산에 비해 순도가 떨어져 완제품의 품질 또는 수율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미 주요 생산설비가 일본산 에칭가스 사용에 최적화돼 있어 대체물질을 찾더라도 세팅부터 다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플레시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6개월 분의 재고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수출규제가 길어지면 수출, 성장률에 타격은 물론, 최악의 경우 반도체공장 가동 중단으로 생산 자체가 멈출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에 장기 체류하면서 현지 정·재계 인사들을 접촉하며 동향 파악에 나선 것도 ‘재고 소진으로 인한 생산 라인 스톱’이라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행보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EUV(극자외선) 라인 전경.[삼성전자 제공]

최근 러시아가 에칭가스를 한국 기업에 공급할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재고 확보에 숨통이 트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아직 러시아산 에칭가스가 수입될 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향후 일본산을 대체할 수 있는 공급 다변화의 한 방안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들 핵심소재를 러시아산 뿐 아니라 대만·중국산으로 대체하고 실제 소재 공급이 이뤄지더라도 테스트 기간을 거쳐야 하고, 수율(투입 대비 생산된 양품의 비율)을 맞춰야 하며, 장기간 공급선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과제로 남아 있다.

동시에 국내 기업에서도 일본산 에칭가스 대체재를 확보하기 위해 작년부터 소재 업체와 협력해 국산화를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소재업체 A사 등과 함께 에칭가스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 중 잔류물 등을 제거하는 박리액, 불필요한 부분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식각액, 유무기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세정액 등을 만드는 A사는 대일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용 화학 소재 분야에서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추진해 현재 실제 공정에 사용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절차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산화 프로젝트가 성과를 거둔다면 일본 소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소외됐던 국내 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핵심소재 국산화를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됐다”며 핵심 소재의 높은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전화위복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SK하이닉스의 경기도 이천 M14 전경.[SK하이닉스 제공]

기업의 자구책 마련과 함께 이번 사태가 세계 IT 시장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 장기화하는데 양국 모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 생산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전개될 경우 비단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애플,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의 타격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국제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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