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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연령 상향, 과제는①]“65세면 한창이라구요? 일자리도 없는데” 노인들 하소연
“평생 열심히 살면 노후엔 행복할 줄 알았는데…”
100세 시대라지만 60대부터 일감 뚝 끊겨…살길 막막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한 빌라에서 김난숙(가명·67) 씨를 만났다. 그는 보증금 100만원 월세 35만원인 3평짜리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김 씨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병원비였다. 무릎 수술을 해야하지만 돈이 없어 인근 의료기기 판매점에서 마사지를 받는 것으로 치료를 대신한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비좁은 방에 냉장고와 각종 살림살이가 뒤엉켜있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몇년전까지만 해도 팔팔했는데 갑자기 몸이 하나둘 망가졌어. 한번 망가지니까 계속 아프더라고. 일을 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독거노인 김난숙(가명·67) 씨가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들어가자마자 부엌 겸 현관이 자리했다. 발 디딜틈 없이 각종 주방용기, 음식재료들이 쌓여 있었다. 김 씨는 “아무리 치워도 너무 좁아서 티가 안난다”고 멋쩍게 웃었다. 방 안에는 침대와 냉장고 외에는 가구조차 없었다. 이불 넣는 옷장도 없어 임시로 커튼을 덧대어 놓은 것이 10년이 지났다.

김 씨는 “젊어서 고생했으니 노후엔 행복할 줄 알았다”고 했지만 현실은 암울했다. 그는 서른두살 때 이혼한 뒤 8년간 대기업 회장집에서 월 20만원 식모살이를 하다가 나와 식당일, 붕어빵 장사를 하며 억척같이 살았다. 그는 “젊었을 땐 부지런하기만 하면 먹고살만한 돈은 벌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IMF이후 그의 삶은 무너져버렸다. 퇴근길 1시간이면 매진이었던 붕어빵은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팔리지 않았다. 이후 청소 일에 뛰어들었다. 새벽 5시부터 허리 한번 펴지 못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건강할 때는 할만 했다.

그러나 예순 무렵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청소일을 하느라 계단을 오르락내리는 일이 많은터라 무릎부터 망가졌다. 아침에 문고리를 잡고 질질 끌 듯 일어설 눈물이 핑 돌만큼 서럽다. 그는 “어느 순간 갑자기 몸이 늙어버리는데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겨우 청소 일을 하면서 혼자서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 그는 100세 시대라는 말이 겁난다. 그는 현재 소득이 잡힌다는 이유로 기초수급자는 물론 차상위계층으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한달 35만원 월세세와 병원비를 내려면 최소한 100만원은 있어야 하는데 건강이 악화될까 걱정될 뿐이다.

그는 노인 연령기준이 올라가면 가난한 노인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씨는 “나도 겉으로 보기에는 67세로 보이지 않지만 막상 일을 하려고 하면 전과 같지 않다”며 “먹고 사는 것은 둘째치고 병원비가 감당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현재 무릎에 계속해서 물이 차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병원비가 부담이 돼 인근 의료기기 판매점에서 고주파 마사지를 받으며 치료를 대신하고 있다. 1시간 마사지를 받고 보답으로 청소를 해주고 돌아온다.

노인 기준연령 상향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75세정도는 돼야 노인’이라고 하는 한국사회에서 60대 젊은 노인들은 이제 노인취급 받지 않아 좋진 않을까 하는 생각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사고였다. 만 65이상 현재 노인들에게 노인 연령 기준 상향에 대해 묻자 한숨부터 터져나왔다.

▶말만 100세시대? 일터에선 소외 받는 60대=이날 서울 서초구행복이음센터 지하1층 무더위쉼터에서 만난 이영순(가명·67) 씨는 노인 연령 상향에 대해 묻자 “그럼 나같은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막막해했다. 그는 현재 소득계층 차상위계급으로 구청에서 쌀 등을 지원받고 의료비 감면 혜택을 받고 있다. 앞으로 노인 연령이 상향된다고 해서 기존 노인들에 대한 혜택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는 “그나마 큰 힘이 됐던 이러한 복지 혜택을 누군가를 받지 못하게 된다는 건데 바람직하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기대수명이 길어졌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60대 이상 구직자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말로는 60대도 젊다고 하지만 좋은 일자리는 없고, 노후 빈곤은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집 근처 세탁소에서 수선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그는 일터에 갈 때마다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서 청바지를 챙겨 입는다. 그는 “당장 나라도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젊은 친구에게 물건을 하고 싶은데 60대 외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면서 “100세시대라고 해도 늙는 것이 특히 일터에서 미덕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연금 보고 버텼는데…불안한 베이비부머=‘은퇴하고 좀 쉬나 했는데….’ 곧 만 65세 노인이 되는 베이비부머세대에게 노인 연령 상향이 된다는 것은 청천병력같은 얘기였다. 만약 노인 기준이 70세로 올라가면 만 65세부터 지급되고 있는 기초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 지하철 경로 우대, 노인 의료비 본인부담 감면제도 등 각종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박모(61) 씨는 5년 전 중견기업에서 은퇴를 했지만 실질적인 은퇴는 자녀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야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지난 30년간 일을 하며 나름대로 노후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국민연금, 은행 적금 등을 모두 합하면 그동안 꿈꿔왔던 여유로운 노후 생활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었다. 박 씨는 “62세에 받기로 돼 있던 국민연금이 그나마 위안이 됐는데 혹시라도 노인 기준 연령 상향으로 국민연금에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늙어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만 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씨는 “사람을 일을 해야 에너지가 생긴다는 말은 여유로운 사람에게나 적용되는 얘기”라며 “평생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는데 노년에 쉬지도 못하고 굶어죽을까 일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다”고 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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