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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과는 부담스러워서…” 저가·온라인 고민상담소 찾는 사람들
-5000원 내고 15분간 친구와 수다떨듯 상담…“털어놓기만 해도 속 시원”
-SNS 고민상담도 인기…전문가 “경쟁사회가 상담문화 만들어”

지난달 28일 방문한 서울시 성북구 성신여대 근방에 위치한 ’안녕히 고민상담소. [박자연 인턴기자/nature68@heraldcorp.con]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ㆍ박자연 인턴기자]“저 직장생활에 고민이 있어서 왔어요.”

지난달 28일 오후 1시 18분께. 서울시 성북구 성신여대 인근에 위치한 ’안녕히 고민상담소’에 방문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고민을 들어주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상담이 시작되자마자 살짝 어두운 오렌지색으로 변한 조명은 상담 공간 주위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옅은 하얀색의 블라인드가 바깥 공간과 상담실을 나눴다.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상담가는 이것저것 신상을 캐묻지 않았다. 그저 어떤 고민이 있으시냐고 물을 뿐이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 고민”이라고 운을 뗐다. 경청하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졌고 8분 가량의 한탄 섞인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가 입을 뗀 건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된 후였다. “저도 직장생활을 했는데 굉장히 안 맞았어요. 그래도 1년만 버텨보자고 했어요. 그게 2년이 되고 3년이 되고 4년이 됐죠. 당시에는 정말 못할 것 같았는데 그게 또 적응이 되더라고요. 한 달이면 본인을 평가하기에는 굉장히 짧은 시간이에요”라며 자신의 이야기가 섞인 조언을 건넸다. 조언 자체도 의미 있었지만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는 듯했다. 그에게 “속이 좀 시원해졌다”고 하자, 그는 “그게 제가 이 공간을 만든 목적”이라고 웃었다.

일상 속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정신과 병원 대신 고민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부분 일상적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인 ‘울분’을 겪는 사람들이다. 각종 고민들로 가슴이 답답하지만 정신과에 가기에는 심리적으로나 가격적으로 부담스러운 이들은 카페 같은 공간에서 낯선 타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음으로써 위로를 받는다. 

지난달 28일 방문한 서울시 성북구 성신여대 근방에 위치한 ’안녕히 고민상담소. [박자연 인턴기자/nature68@heraldcorp.con]

‘안녕히 고민상담소’의 이재현 대표가 상담소 운영을 시작한 지는 약 6개월. 고민을 들어주는 가격은 빠른 고민 해결은 15분 5000원, 긴 얘기를 들어주는 1시간 상담 코스는 2만5000원이다. 일반 병원이나 심리상담센터의 4분의 1 가격이다. 그는 “일반 정신과나 상담센터는 회당 대략 10만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해 학생들이나 사회 초년생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는데, 그런 것도 고려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골목에 자리 잡은 한 고민상담소에도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곳에는 이용자들이 고민을 적어 가게 안 유리병에 넣으면 이를 SNS상에 공개하고 댓글로 소통한다. ‘축의금으로 몇 백 날렸는데 회수 못할 것 같아 걱정인 분들’,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주말에도 일을 하는걸까 걱정인 사람들’ 등 다양한 걱정 테마를 잡고, ‘번개(갑작스러운 만남)’를 진행하기도 한다.

운영자는 “다 비슷비슷한 걱정을 하는데 ‘그 걱정을 나만 하는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을 때 큰 위로가 되는 것 같다”며 “이들의 걱정은 해결되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라는 것을 가게를 운영하며 깨달았다”고 말했다. 고민과 걱정을 공유하고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그 걱정은 당연한 거다’라고 말해주며 사람들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방향을 찾아가고 있는 셈이다.

오프라인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익명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고민상담을 이용한다. ‘옆집에 사는 외국인이 너무 시끄럽다’는 고민을 재치있게 풀어내는 유튜브 ‘비보TV’ 채널이 대표적이다. 구독자들과 실시간 고민상담을 진행하는 유튜버들도 상당수다. 시청자들은 유튜버가 타인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것을 보면서 실질적인 조언을 얻는다. 취업준비생 조모(28) 씨는 “취직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이 느껴질 때 주위에 묻기보다는 유튜브 고민상담을 이용하는 편”이라며 “유튜버 마다 고민상담해 주는 내용이 다른데 다양한 답변을 보고 가장 적절한 방법을 취사선택”고 말했다.

전문가는 고민상담소의 인기에 대해 경쟁적인 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분석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도 있듯이 요즘은 사내 동료들도 경쟁자다. 예전 같으면 소주 한잔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동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는데 이재는 경쟁시대이기 때문에 그러기 어렵다”며 “안타깝지만 그런 상황 자체가 이런 문화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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