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현장에서] U20 준우승과 병역특례
지난 17일 서울광장에서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 한 축구대표팀 환영식이 열렸다. 족히 1000명은 넘어보이는 시민들이 선수들을 환영했다. 역대급 기록을 세운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에게 고마웠다. 흉흉한 범죄 소식들과 국회 정쟁 등 웃을 일 없는 최근 몇주간 우리 선수들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그러나 현장을 지킨 기자에게 가슴이 꽉 막히는 구석이 있다. ‘한국을 널리 알렸다’는 국위선양 성과를 근거로 또다시 대한민국 한켠에 드리워진 ‘병역특례’ 논란의 그림자 때문이다.

U20 결승전을 앞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FIFA U-20 월드컵 축구에서 우승하면 선수들에게 병역혜택을 주자’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만약 결승에서 우크라이나를 꺾고 우승하면 이것은 2002년 월드컵 4강보다 더한 결실로 해외에서 뛰는 선수를 비롯해 모든 선수들의 앞날을 열어주는 의미”라며 “특별법으로 병역면제의 혜택을 주길 간절히 원한다”고 썼다. 해당 글은 현재 7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U20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병역 특례를 줘야 한다는 주장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기자가 불편한 것은 병역 특례 주장이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불과 지난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이 이겼다. 숙적 일본을 꺾으며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한 선수들에게 병역법에 의해 병역특례 혜택이 주어졌다. 그들은 4주 기초 군사훈련만 마치면 특기 분야에서 34개월만 종사하면 된다. 사실상 군복무가 면제된 것이다. 올들어서는 방탄소년단에게 병역특례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들이 빌보드 200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그 결과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된 노래였다는 점은 한국인들에게 뜨거움을 선사했다.


한국의 유별난 병역 특례에 대한 해외의 시선은 어떨까.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축구 결승전에 대해 해외에선 ‘손흥민 병역 결정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명백한 비아냥이다. 일본 스포츠 언론은 ‘병역 면제라는 최강 당근을 앞세운 탓에 한국과의 경기에서 실력차가 났다’고 보도했다. 한국에게 진 일본의 고까운 심사가 고스란히 읽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긴 어려운 아픈 지점이기도 하다.

때로는 국가가 직접 나서 병역 특례를 주는 전례도 있었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은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다. 당시 정부는 병역법 시행령을 개정해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16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사람도 특례 대상에 포함한다’고 정했다. 2006년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에 진출하자 WBC 4위 이상도 병역특례 대상에 포함되기도 했다. 그러나 혜택이 남발되고 있다는 비판의 여론이 일면서 두 병역특례 조항은 2007년 다시 삭제됐다.

스포츠 경기 우승이 국위를 선양했다는 발상도 구시대적이다. 야구나 축구에서 우승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국격은 충분히 높다. 스포츠강국을 만들어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양시키고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생각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큰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한동안은 애국가만 나와도 뭉클해지는 국민통합 마법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군면제라도 걸어 선수들을 열심히 뛰게 하는 게 국가차원에서 해야 할 일일까.

자랑스러운 U20 젊은 친구들은 인터뷰에서도 남달랐다. 인터뷰에서 엄원상 선수는 빨리 뛸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부모님이 주신 가장 좋은 유전자”라며 “그저 상대방에게 지기 싫어서 뛴다”고 했다. 박지민 선수는 3주란 긴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힘을 “간절하게 준비한 덕분”이라고 했다. 어떠한 당근을 주고서라도 선수들이 우승하게 하고 싶은 축구팬들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저 상대방에게 지기 싫어서 뛰었는데도 준우승할만큼 우리 선수들은 뛰어나다. 병역 혜택이 없어도 간절하게 뛴다. 그게 스포츠정신이다.

정세희 사회섹션 사회팀 기자 sa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