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어린이 놀이터 15곳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분석 -고무바닥 놀이터가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더 잘 흡수해

고무바닥 놀이터, 모래바닥 놀이터보다 발암물질 4배 이상 많아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고무바닥 놀이터가 모래바닥 놀이터보다 발암물질이 4배 이상 많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현재 놀이터 바닥은 모래(흙)가 깔려있거나 물리적인 완충을 위해 고무로 포장된 게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모래 놀이터보다 먼지가 덜 난다는 이유로 고무로 바닥을 만드는 놀이터가 많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피부접촉이나 호흡 또는 손을 입으로 가져가는 행위 등을 통해 바닥 면의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을 포함한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다.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 권정환 교수팀은 서울 시내 어린이 놀이터 15곳 중 고무 표층을 설치한 놀이터 10곳과 고무 표층 없이 모래(흙)로 된 놀이터 5곳의 지표 토양 및 먼지 샘플을 수집해 PAHs 농도를 측정했다.

분석 결과 전체 놀이터에서 벤조피렌을 비롯해 나프탈렌, 아세나프틸렌, 페난트렌, 안트라센 등 총 16종의 다환방향족탄화수소가 2.82∼57.93㎍/g 농도 수준에서 검출됐다. 연구팀은 발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자량 다환방향족탄화수소’의 경우 주로 차량의 배기가스나 화석연료의 연소에 기인한 것으로 봤다. 다환방향족탄화수소는 분자량이 적으면 자연환경에서 분해되지만 벤젠고리 수가 증가해 분자량이 커지면 먼지 등에 흡착돼 오래 남아 인체에 유입될 우려가 커진다.

그리고 고무표층이 처리된 놀이터의 토양과 먼지에서 검출된 다환방향족탄화수소 평균 농도가 18.1㎍/g(4.91∼57.93)으로 모래 놀이터의 4.18㎍/g(2.82∼6.46)보다 4.3배가량 높았다. 연구팀은 고무바닥 놀이터의 토양과 먼지가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를 더 잘 흡수할 수 있는 화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특히 환경 유해 요인의 위해성을 계산하는 ‘몬테카를로 평가’로 고무 표층이 처리된 놀이터의 발암 위해도와 모래 놀이터에서의 발암 위해도에 비교한 결과에서도 고무표층 놀이터의 위해도가 10.2배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다만 연구팀은 이런 비교 수치가 놀이터 표층의 토양과 먼지 입자를 섭취하거나 호흡할 때 여기에 포함된 다환방향족탄화수소가 모두 체내로 흡수된다는 ‘최악의 조건’을 가정했다는 단서를 달았다. 권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순히 위해성만을 평가한 것”이라며 “실제 두 놀이터 간 발암 위험성을 보다 정교하게 분석하기 위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와 관련해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교실 교수는 “놀이터에서 검출된 다환방향족탄화수소의 유해성이 이 정도로 추정된다면 당연히 고무바닥을 걷어내는 게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모래의 경우에도 중금속 오염도 등 측면에서는 또 다른 유해성이 있을 수 있어 여러 가지 위해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결과는 국제학술지 ‘환경지구화학과 건강(Environmental Geochemistry and Health)‘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