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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김용대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 과학과 정치의 오묘한 관계에 대해서
나는 386세대 과학자이다. 민주화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른 80년대에 자연과학대학에 입학했는데, 과학이 무엇인가보다는 과학과 정치와의 관계를 먼저 배웠다. 과학과 정치는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고 과학자의 올바른 정치적 견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선배로부터 들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총괄 지휘자인 물리학자 하이젠베르그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태업과 그로 인한 원자폭탄 개발의 실패를 통해서 과학과 정치의 오묘한 관계를 맛보았다.

하지만 80년대 말 국내 민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소련의 붕괴, 그리고 이후 전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와 글로벌화의 흐름 속에서 과학기술은 정치로부터 멀어져서 인류의 새로운 먹거리 창출과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 수단이 됐다. 소련의 침공에 대응하는 군사용 통신수단의 개발로 시작된 인터넷은 이제는 모바일, 유튜브, SNS등으로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 들었으며, 미국의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 거의 모두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또한 우버, 에어비앤비, 넷플릭스 등 급성장하는 플랫폼 기업도 인터넷이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동안 잊혔던 과학기술과 정치의 오묘한 관계가 최근 미중 무역전쟁으로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5G기술 선도기업인 중국의 화웨이에 대해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의 연합체가 엄청난 정치적 공세를 가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이번 화웨이 사태는 5G기술이 국가안보에 매우 중요하며 이렇게 중요한 기술이 중국에 의해서 독점되어서는 안 된다는 슬로건으로 유럽, 일본 등의 동맹 국가들을 설득하고 있다. 중국도 러시아와 5G동맹을 맺으면서 일사항전을 불사하겠다는 전의를 다지고 있다. 3차대전이 총성 없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이번 화웨이 사태에 매우 난감한 입장이다. 이미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통신사도 있고, 화웨이 장비의 대부분의 제품을 납품하는 회사도 있다. 또한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으로서,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통신관련 사업뿐 아니라 지난번 사드 사태처럼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이 5G관련 국내 관계사들에게 노골적으로 경고를 했다는 외신보도도 들린다. 현명한 정치외교적 판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2차대전 전후의 상황과 현재 상황과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20세기 중반 냉전시대에는 과학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무기개발이었다. 더 강한 폭탄, 더 빠른 비행기의 개발을 위하여 천문학적인 자원이 과학에 투자됐다. 이에 비해 21세기 4차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5G, 인공지능, 플랫폼 기술 등은 민간영역에서 사업적 동기로 자생적으로 시작됐으며, 군비확충과 같은 정치적 이해관계와는 크게 상관없이 발전했다.

이러한 민간 자생적 기술이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서게 된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지만, 그중 눈 여겨 봐야 하는 부분은 4차산업혁명 관련 기술들은 국가라는 개념을 뛰어 넘는다는 것이다. 최근에 급증하고 있는 해외직구 현상은 인터넷 기술에 의해서 쇼핑분야에서 국가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잘 보여준다. 유튜버의 등장 및 성장도 유튜브라는 글로벌 콘텐츠 유통 플랫폼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유튜브라는 미국회사의 플랫폼 위에서 우리나라 콘텐츠들이 우리나라 안에서 유통되고 있는 재미있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을 한국 사람들끼리 사고 팔고 있는 것이다. 30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현상이다.

기술의 국제화가 결국 정치적 충돌로 이어지고 있다. 기술의 국제화에 어울리는 국제적 질서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지는 시점이고, 미국에 의해서 공론화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결은 조금 다르지만 과학기술과 정치의 갈등이 다양한 분야에서 표면화 되고 있다. 최근에 이슈화된 차량공유서비스에 대한 민간사업자와 정부관계자와의 설전은 국내적으로도 새로운 기술에 걸 맞는 새로운 정치적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과학기술과 정치가 다시 만나야 할 시간이 도래하고 있다.

김용대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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