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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군주의 죄기조와 두산의 저력
한무제의 공개 자기반성
절대권력 책임정치 묘수
두산重ㆍ건설 유상증자
최대주주 책임경영 실천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자치통감(資治通鑑)을 지은 사마광(司馬光)은 진(秦) 시황제(始皇帝)와 전한(前漢) 무제(武帝)를 닮은 꼴로 평가했다. 선대(先代)에서 축적한 힘 덕에 꽤 정복 업적을 쌓았지만 경제를 파탄냈고, 불로장생과 미신을 쫓다 후계를 어지럽게 만든 점이 평행이론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그런데 시황제도 하지 못한 한 가지를 무제가 해낸다.

무제는 말년에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온 나라에 밝힌다. ‘죄기조(罪己詔)’다.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전하는 제왕의 공개 반성문이다. 내용이 상당히 통렬하다. 이후 중국의 제왕들은 98 차례나 ‘죄기조’를 짓는다. 전제군주제가 2000년 넘게 이어진 중국이지만, 절대권력자에게도 ‘책임정치’의 형식은 필요했던 듯 싶다.

두산그룹 총수 일가가 지주회사 ㈜두산 지분을 일부매각해 경영난을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 지원자금으로 활용했다. 또 고(故) 박용곤 회장 지분 상속도 재단 등을 활용하면 합법적인 절세도 가능했지만, 굳이 고액의 상속세를 납부하는 선택을 했다.

두산이 지난달 31일 공시한 지분변동 내역을 보면 고 박 회장의 세 자녀인 박정원 ㈜두산 회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박혜원 두산매거진 부회장은 선친으로부터 28만9165주를 상속받으면서, 기존 보유주식 가운데 26만340주를 처분(주당 9만3000원)했다.

발행주식 5% 미만의 지분은 공익재단에 증여해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두산 지분 3.09%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 두산연강재단에 박 전 회장 지분을 넘겼다면 굳이 보유지분을 많이 팔지 않을 수도 있었다. 증자 대금마련을 위한 일부만 매각했다면 납부해야 할 양도소득세도 줄일 수도 있다. 박 회장 남매의 선택은 모든 세금을 다 납부하는 쪽이었다. 이번 상속과 상관 없는 다른 사촌들도 지분을 매각했다. 수 십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낸 후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에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두산건설은 지난해 대규모 부실을 정리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최대주주인 두산중공업이 증자를 단행했고, 이렇게 마련된 자금을 두산건설에 투입했다. 두산그룹 총수 일가들은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 소수지분을 보유 중이다. 경영권 유지에는 필요가 없다. 하지만 두 회사 증자 과정에 구주주 배정물량을 모두 소화했다. 두 회사 공시를 보면 금융소득 등으로 자금을 마련했다. 먼저 금융기관에 보유 중인 ㈜두산 지분을 일부 맡기고 대금을 융통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두산 지분을 매각해 융통한 돈을 갚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지분변경으로 두산그룹 최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은 46.72%에서 42.88%로 떨어졌다. 경영을 맡은 최대주주 일가로서 두산건설 경영악화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않은 셈이다. 두산중공업 우리사주 조합도 이번 증자에 참여 약 940억원의 자금을 넣었다. 업황이 어렵다지만, 노사가 이처럼 뜻을 함께 한다면 경영정상화가 요원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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