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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골든타임 놓친 진상규명’과 내부자들
‘이게 경찰이고, 검찰이냐’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장자연 리스트 사건’ 조사 및 심의결과 자료를 모두 읽었을 땐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진실은 그곳에 없었다.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이 13개월 간 84명을 조사했지만, 진실을 파헤칠 ‘골든타임’을 놓친 조사 끝에 남은 건 허무함이었다. 장 씨가 친필로 자신의 피해사례를 언급한 문건은 대체로 사실에 부합하다는 과거사위의 판단이 있었으나, 일부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났고 처벌가능성이 남은 특수강간 혐의는 육하원칙에 따른 사실과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 장 씨가 입은 피해의 사실여부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증거수집이 초기수사단계에서 이뤄지지 않은 탓이었다.

발표 현장에 검경은 없었지만 곳곳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것도 진상규명 실패의 원인으로서. 부실한 압수수색과 우연치고는 너무나도 치밀한 자료 누락. 그것도 진상규명에 필요한 핵심자료들이 누가 고의적으로 뭉갰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쏙 빠졌다.

그리고 등장한 언론. 과거사위는 “수사 검사는 불기소 이유에 장자연 문건에 나오는 ‘조선일보 방 사장’이 방 씨의 지인 하모 씨일 수도 있다는 오해를 만듦과 동시에 방 씨 두 사장에 대한 추가적 조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은폐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당시 경찰청장과 경기청장에 협박성 발언을 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권도 교체할 수 있다’는 언론권력에 수사기관들이 알아서 엎드린 것일까. 아니면 언론권력의 수사외압이 부실수사로 이어진 것일까. 이에 대한 결론은 과거사위가 도출하지 못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개개인의 인권 수호에 앞장서야 할 수사기관이 한 사람의 개인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권’을 이유로 수사권 조정문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검경이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을 외면했다.

모든 공소시효는 완료됐다. 조선일보에 협박죄를 적용할 수도, 김 씨에게 강요죄를 적용할 수도, 검경에 내부 징계를 권고할 수도 없다.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의 ‘골든타임’도 모두 끝나버렸다. 부실수사에 대한 사회적 파장과 혼란의 대가는 온전히 우리 사회의 몫이 돼버렸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취임 후 인권부를 설치하고 국민 인권수호에 앞장섰다고 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민주ㆍ인권ㆍ민생경찰을 확고한 지향점으로 삼아 국민의 온전한 신뢰를 얻어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국민이 검경 개혁과 공수처 설치에 목소리를 높이는 건 과거 부실수사와 자료누락이 왜 발생했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검경의 소극적 대응 때문 아닐까. “(자료누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변명이 아니라 압수수색과 당시 사건수사를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 따져보고, 있을 수 없다는 결과가 왜 나왔는지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mun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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