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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기억에는 악취가 풍긴다

  • 기사입력 2019-05-1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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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은행’은 분노를 인출하려는 사람들로 넘친다. 필요할 때만 조금씩 찾아 써야 할 분노가 일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분노은행의 ATM은 텅 비어있다. 익명의 인터넷 댓글엔 욕설이 넘친다.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기명의 SNS도 조롱과 험담으로 가득하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한때 정치계에 몸을 담았던 지식인조차 상대를 안 가리고 혐오 발언을 쏟아낸다. 지인들은 댓글을 달고 추임새를 넣는다. SNS는 권력을 조롱하며 묘하게 권력화 돼 있다. 최근엔 제1야당 원내대표도 ‘혐오’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혐오 발언은 초미세먼지처럼 우리 몸에 흔적을 남긴다.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받을 수 있는 ‘그냥 말’이 아니라, 타자를 그 말에 종속시키는 ‘차별행위’다. “혐오 발언은 혐오 발언의 재순환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것의 효과를 경감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신의 트라우마적 찌꺼기가 완전히 정화된 언어는 없다. 언어의 반복과정을 향하는 데 드는 끈질긴 노력을 거치지 않고서는 트라우마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주디스 버틀러의 말이다.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악취 풍기는 그 단어를 나는 적시할 용기가 없다.

프로이트는 “기억은 물질적 대상이 악취를 풍기듯 악취를 풍긴다. 우리가 악취에 역겨워 하며 감각기관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과 똑같이, 전의식과 의식의 감각은 기억으로부터 고개를 돌린다”라고 말한다. 놀라운 지적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모욕적인 부름은 그 모욕적인 부름에 반박하고자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어떤 주체를 언어 속에 도입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상처의 장소가 될 수 있지만, 이름 부르기는 저항 운동을 개시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라고 주장한다. 혐오 발언은 그 용어에 대한 공격적인 되받아치기(speaking back), 혹은 재전유(appropriating)를 통해 저항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태원은 그의 ‘을의 민주주의:새로운 혁명을 위하여’에서 “정치는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의 말을 인용한다. 그 깊은 울림은 ‘들리는 것 마저 들리지 않게 하고, 보이는 것도 안 보이게’하는 한국 정치 앞에선 빛을 잃고 만다.

언어가 남긴 상처는 깊다. 억압처럼, 유령처럼 끊임없이 되돌아온다. 그리고 우리를, 당사자를 괴롭힌다.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정치는 배제의 정치다. 삶의 정치가 아니라 죽임의 정치다. ‘성서’ 사사기가 떠오른다.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Schibbolet)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Sibbolet)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사사기’ 12장 5~6절)

‘쉽’과 ‘십’ 사이는 돌아올 수 없는 거리다. 우리 사회는 ‘쉽’과 ‘십’ 사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가.

“권력은 누구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과 함께 행동할 때 생겨나고 그들이 흩어질 때 사라지는 것”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혼자서 ‘우리’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사람들이 함께 행동할 때 생겨나고, 사람들이 분열할 때 사라진다. ‘우리’를 해체하고 ‘우리끼리’만을 추구하는 정치권의 행위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언어는 자신이 의도한 곳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김능옥 레이아웃룸 에디터  kn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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