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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신율 명지대 교수] 남 탓의 정치학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이인영 원내대표)

“그건 해주세요. 진짜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김수현 정책실장)

“단적으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해…”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들을 하고…”(이인영 원내대표)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당정청 회의 시작 전에 나눈 대화 내용이다. 둘은 방송사 마이크가 켜있는 줄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나 ‘솔직해져’ 버렸다. 이 대화 내용의 핵심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 내용이 지금 세간의 논란이 되는 이유는 바로 현 정부의 주특기(?)인 남 탓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과거에도 자신들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거의 항상 과거 정권 탓만을 해왔다. “적폐 때문에”, “과거 정권의 경제 정책이 잘못돼서” 등을 언급하며 과거 정권의 잘못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는 식이었다.

이제는 그 ‘탓’ 대상이 공무원들이 되는 것 같다. 이들의 말대로 공무원들이 지금 복지부동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정책을 이끌어야 할 권력 핵심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태도가 못마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탓을 하기 전에 공무원들이 왜 복지부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됐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게 된 데는 현 정권의 ‘적폐청산’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정권에서 일했던 많은 공무원이 불이익을 받거나 감옥으로 갔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은 복지부동할 수밖에 없다. 윤여준 전 장관이 “적폐청산에 대해 공직사회에서 반발 심리가 많다. 모든 공무원들이 상관의 지시를 녹음하거나 기록한다. 이건 (국가에) 도움이 안된다”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22일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되어야지,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서는 안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지금 공직사회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복지부동하지 않고, 용기 있게 자신의 소신을 말하면 정권으로부터 비난받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무일 검찰총장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해 자신의 소신과 문제점을 지적하니까, 여당은 그를 ‘조직이기주의’의 대변자로 몰아세웠다. 요약하자면, 정권 말 잘 들으며 열심히 일하면 나중에 정권이 바뀌었을 때 적폐로 몰릴 가능성이 있어 몸을 사릴 수밖에 없고, 용기있게 현 정권의 정책노선에 반기를 들면 조직이기주의에 물든 사람으로 몰릴 판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바로 현 정권이다. 자신들이 이런 상황을 만들고서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한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만일 현 정권이 우리는 항상 선하고 옳으니까 나중에 정권이 바뀐다고 적폐로 몰릴 상황은 없다고 하며 공무원을 설득하려 한다면 과연 효과가 있을지도 궁금하다. 자신들이 항상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 정권 권력 핵심들이 가진 공통적 사고일 수는 있지만, 모든 국민이 한결같이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궁금한 점이 있다.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의 현실 인식이 다른 것 같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아 9일 가진 TV 대담에서 “G20 국가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은 상당히 고성장”이라고 했고, “저소득 노동자 비중이 역대 최고로 낮아졌다”고 했다. 이 말의 적실성은 차치하고, 문 대통령의 말만 들으면 지금 우리나라는 아주 잘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탓할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을 칭찬해 줘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참모나 여당 원내대표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한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은 우리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마디로 현 정권의 핵심들은 자신들의 현실인식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남 탓만 하고 있다. 남 탓 이전에 본인들의 현실 인식부터 정리해야 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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