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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나라 말기 활짝 핀 ‘소비사회’는 왜 시들었을까

  • 기사입력 2019-05-1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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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음식·가구·주택 등 일상생활
사치품 대량 생산 서민들에도 퍼져
중국 근대화, 서양만큼 소비 대중화
‘사치풍조는 경박’ 경제 긍정성 무시
 영국 산업혁명 발전과 다른 길 걸어


명대 사람이 그림 ‘남도번화도’ 중의 신발가게. 간판에 신발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경성식 신발가게라고 적혀있다. [글항아리 제공]

“남경의 서반 곽정림이 견여를 타고 길을 비켜라고 소리치다 국자감 학생 섭문현을 만났는데, 섭문현이 관청을 둘러싸고 소란을 피우며 곽정림을 구타했다.”

1579년 5월 중국 남경에서 선비들이 집단으로 관리를 구타한 사건을 다룬 ‘명신종실록’의 기록이다. 특수집단인 고급관리만 타던 가마를 하급관리까지 탈 정도로 흔해지자 신분 지위 싸움으로 번진 사건이다.

신분제의 상징이었던 가마는 명대 중엽 이후에는 생원 뿐 아니라 상인 및 배우들도 타게 된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신흥세력이 권력의 문화상징을 소유하는 일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명말에는 가마를 비롯, 의복, 여행, 가구, 상차림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사치품이 서민들에게까지 유행하게 되는데, 중국 지난 국제대학 역사과 교수인 우런수는 저서 ‘사치의 제국’(글항아리)에서 이 시기 사치품의 일상화가 이뤄졌다고 지적한다. 사치현상은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통치계급이나 부유층에 한정된 반면 명말에는 사치 풍조가 처음으로 사회 하층계급에까지 파급, 중국의 첫 소비사회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가령, 복식의 경우 명대 중기 이후 평민의 복식문화에 일대 변화가 생긴다. 말총으로 만든 남자 치마인 마미군이란 최신 유행부터 복고풍, 상류층의 복식을 모방한 옷까지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바뀌었다. “오늘날 남자들은 문양이 들어간 비단옷을 입고 여자는 금과 옥으로 치장을 하니, 모두 분수에 지나침이 끝이 없으며 나라에서 금하는 정도를 넘어섰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민간에서 ‘왕의 복식’이라는 양식이 생겨나기도 했다.

특히 소주는 당시 복식 유행의 중심이었는데 이는 수공업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저자는 지적한다. 화려하고 새로운 것을 중시하는 세련된 소주의 유행 복식은 복식소비에 대한 대량 수요를 만들어내고, 의류업과 방직업을 활성화시켰다는 것이다.

명말에는 단위 시간당 생산량을 대폭 증가시킨 생산기술의 혁신도 이뤄진다. 사치품이 대량으로 만들어지면서 값이 떨어지고 일상품이 된 것이다.

음식의 사치는 연희에서 잘 드러난다. 명 전기에는 식재료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채소와 육류의 종류 및 양도 많지 않았는데 명말에 이르러선 육류 반찬이 열가지가 넘었다. 상류층의 연희는 더욱 사치스러워, 산속, 바닷속 진미, 남쪽의 굴 껍데기, 북쪽의 곰 발바닥, 동해의 전복 구이, 서역의 말젖, 진귀한 제비집까지 갖추었다.

사치의 중심인 강남의 주택 역시 화려해졌다. 칸수도 늘어나고 침상과 회랑, 정원 정자의 못 등 주택꾸미기가 유행했는데 특히 정원 꾸미기가 일대 붐을 이뤘다. 이와함께 고급 가구에 대한 수요도 급증, 명 가정 연간의 부정부패로 재산이 몰수된 내각 수장이었던 엄승 부자의 몰수 목록은 이를 잘 보여준다. 대리석 병풍, 양가죽 병풍, 금박 병풍 등 화려하게 장식한 병풍과 대리석과 나전 등으로 장식한 침상, 등나무를 조각해 금박을 입힌 여름용 침상 등 고급가구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이런 가구들을 서민들도 모방해 갖추게 되면서 자신들의 문화자본에 위기감을 느낀 사대부들은 서재 가구 등에 시와 낙관을 새겨 넣는 등 자신들의 상징을 만들어내게 된다.

명말에는 가구 산업이랄 수 있을 만큼 대도시에 민영 가구공장과 가구점이 출현하게 된다. 명말 소주의 가구업은 소목작업으로 불리며 건축업인 대목작업과 구분했다. 장인들은 자신의 집에서 제품을 만들어 직접 판매했는데, 당시 유명했던 장인들이 청대에 까지 계속 남아있었다. 일종의 브랜드가 형성된 것이란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명말 소비 현상의 특징으로 시장 구매율의 증가, 사치품의 일상품화, 사치의 보편화, 유행의 형성, 신분제도의 붕괴, 사치관의 신개념을 든다. 그렇다면 이같은 소비 사회현상이 일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부의 증가를 꼽을 만하다. 당시 수공업과 방직업의 발전으로 가계 수입이 증가하면서 생필품 외의 것에 눈을 돌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비록 전국적 규모로 형성되진 않았지만 시장이 확산되면서 소비자가 시장에서 구매하는 비율이 높아졌으며, 대외무역의 확대는 특히 당시 수공업과 농민이 이익을 꾀할 수 있게 했다. 이에따라 당시 수공업과 면사 생산의 중심지인 강남 지역의 전문화와 상품경제 발전을 이끌게 된다. 또한 백은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중국의 화폐 공급량이 대폭 증가해 화폐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강남으로의 도시 집중화도 소비 대중의 출현을 부추겼다. 벌어들인 화폐로 생활용품과 사치품을 샀으며, 동시에 도시의 소비력은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소비를 더욱 확대시키는 순환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명말의 소비의 대중화는 지금까지 중국의 근대화가 서양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명말에 이미 중국이 소비사회의 형성기로 진입했다는 얘기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동력이 된 소비사회현상이 중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소비사회는 왜 영국처럼 산업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했을까. 저자는 이를 사치관의 차이에서 찾는다. 명청시대 사치관은 사회질서와 재정 측면의 우려로. 가치판단적 경향을 보인다. 사치 풍조를 경박함으로 표현하며, 배척해야 할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백성을 교화하고자 했다. 경제발전에 필요한 긍정적 측면이 무시된 것이다. 반면 영국은 상업 시대였기에 사치론의 변화가 요구됐고, 무역, 상업, 정치·경제 등과 같은 영역에서 새로운 지식으로 포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치관념을 수용하는 데서 생긴 차이가 역사가 다르게 발전한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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