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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호부호형’ 못하는 서자의 시대
‘호부호형(呼父呼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른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이 당연한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양반과 첩 사이에서 난 ‘서자’가 그들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이 서자들의 한이 어찌나 깊었는지 ‘홍길동’이란 한반도 역사에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소설이 나왔을 정도다. 서자의 한을 만든 축첩이라는 양반의 특권도 사라진지 100년이 지났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북한 김정은은 미사일을 쐈다는 평가가 여기저기 나오는데,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도 정체 불명 발사체를 ‘분석중’일 뿐이다. 전문가들이 언론을 통해 러시아산 미사일을 북한식으로 계량한 제품이라고 상세한 제원과 특징까지 설명해주지만, 여전이 공식적으로는 정체 불명 발사체일 뿐이다. 오히려 정부는 북한의 굶주림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대북 쌀 지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사일을 미사일이라 부르지 않으니, 그 다음 단계 대응도 어색해질 뿐이다.

내치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2년을 평가하는 자리마다 경제, 특히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이 크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권력으로 시장을 바꾸는 ‘변화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 부작용’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은 세계적으로 족보가 있는 이야기”라며 “ILO는 오래전부터 임금주도성장을 주창해 왔고 많은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판은 ‘기득권의 저항’ 또는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반대자는 조용히 있어야 하는 현대판 ‘서자’인 셈이다.

태양광 패널을 위해 허리가 한 움큼씩 잘려나가는 산과 별 이유없이 멈춰선 원자력 발전소들, 겨울ㆍ봄 가뭄에도 수문을 열어논 강의 보들, 머지않아 터질 것이 뻔한 건강보험재정과 공무원연금 부채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호부호형’을 가로막는 이유로 ‘진정성’이 등장한다. 경제 정책의 부작용이 암만 커도, 심지어 안될 것이 뻔히 보여도 그 뜻이 올바른 것이기에 참고 가야한다는 논리다. 북한과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어떤 망나니 짓을 하더라도 참고 웃으며 대해주면 언젠가는 변할 것이라는 진정성이다. 산 허리가 잘려나가는 탈원전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진정성으로 포장해 사실을 말 못하게 하고, 또 다른 것으로 포장하는 ‘정치적 눈가림’은 머지 않은 미래로 폭탄을 돌리는 행위일 뿐이다.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하면 지금 수정하고 고치면 10으로 막을 수 있는 손실을 100까지 키워 떠넘기는 미래 세대에 대한 ‘방관’이다. 심지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시점이 미래세대가 아니라 당장 3년후, 5년후 우리 자신일 가능성도 높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한 것이온데 왜 홍시 맛이 나냐고 물으시오면 저는 그저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한류 열풍의 시작점인 드라마 대장금에 나온 유명한 대사다. 잘못됐다는 비판은 잘못된 현상에서 비롯된 잘못된 미래가 보이기에 당연하게 나오는 것이다. 아직도 일해야 할 시간이 더 많은 집권층에게 필요한 것은 신념으로 포장한 고집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다. 그것부터 당장 인식해야 할 것이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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