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고발된 與野 의원만 68명
스스로 만든 ‘국회선진화법’ 무색
고성이 오갔고, 욕설과 폭력이 난무했다. 협상과 타협은 없었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동물국회’였다. 국민들은 한편의 코미디물, 한편의 폭력물을 보며 아예 외면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의결로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 설치를 위한 첫 단추가 끼워졌다. 하지만 국회를 초토화시킨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남은 것은 불통과 폭력에 따른 유례없는 고소ㆍ고발전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국회는 국회 선진화법이 제정된 2012년 이전의 동물국회로 되돌아갔다. 아니, 예전의 동물국회 이상의 추태를 보여줬다. 이번 국회는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스스로 초래했다. ▶관련기사 4ㆍ5면
30일 새벽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야 3당 소속 의원들이 모여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의결했다. 그러나 의결 직전까지 특위가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장은 항의하는 한국당 의원들과 이에 격분한 여야 의원들로 회의 막판까지 대충돌했다.
여야 4당 의원들과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한국당 의원들의 반발을 우려해 지난 29일 오후 한국당 의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회의장을 변경했다. 뒤늦게 찾아온 한국당 의원들은 회의장 기습 변경에 고성과 함께 격한 항의를 쏟아냈다.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뒷구멍으로 들어와 선거법 개정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냐”며 여야 4당을 비판했고, 심 위원장은 이에 “그러게 왜 회의장을 가로막느냐”고 맞서며 회의를 강행했다. 결국 한국당 의원들의 항의로 의결은 날을 넘긴 30일 오전에서야 이뤄졌다.
사정은 공수처법을 의결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한밤중 회의실이 기습 변경됐고, 한국당 의원없이 여야 4당 의원들의 투표만으로 패스트트랙 지정이 의결됐다. 뒤늦게 찾아온 한국당 의원들이 바른미래당의 불법 사보임과 일방적 의결을 문제삼으며 항의에 나섰지만, 저지하지는 못했다.
이번 사태는 시작부터 ‘선진화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평가다. 국회는 지난 22일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선거제와 공수처법, 검ㆍ경 수사권 조정안의 패스트트랙 처리를 25일까지 완료키로 합의하면서 극한 대치정국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날치기’ 논란이 일었고, 패스트트랙 지정은 순탄치 못했다. 바른미래당의 사보임 사태가 겹치면서 국회에선 ‘빠루(쇠지레)‘까지 등장하면서 ‘쌈박질 국회’로 변질됐다.
충돌 과정에서 이어진 양측의 고발전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여당은 국회 회의실을 가로막은 한국당 의원들을 국회 선진화법 위반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무더기 고발했고, 한국당 의원들은 점거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 15명과 사보임을 강행한 문희상 국회의장, 김관영 바른미래 원내대표를 고발했다. 여기에 정의당도 한국당 의원 40명을 특수 감금 및 주거침입 혐의로 추가 고발하며 피고발된 국회의원만 68명에 달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다시 재현된 동물국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국회 내 날치기 처리와 몸싸움을 만들고자 처벌조항까지 만든 게 국회 선진화법인데, 지금 그걸 만든 의원들이 스스로 국회 선진화법을 어기고 있다”며 “특히 몸으로 국회 회의장 입구를 막고 몸싸움을 일으킨 의원들은 정치적 책임 뿐만 아니라 사법적 책임도 함께 지게 됐다”고 했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