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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 낙태 리포트①]“수술 도와줄게”…임신 여고생 유인하는 ‘검은 손길’ (영상)


- 임신 상담글 올리자 ‘도와준다’는 사람들…취재진, 여고생 가장해 한 남성과 만나
- 여고생 절박한 마음 이용해 “집에 말하면 쫓겨날 것” 가출 유인
- 수술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성매매’ 알려주기도

<편집자주> 헌법재판소가 오는 11일 낙태죄 위헌 여부를 선고한다.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태아의 생명권 존중 차원에서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다. 이러는 사이 정작 소외된 곳은 따로 있다. 청소년들의 임신이다. 청소년들의 첫 성관계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그에 비례해 청소년들의 임신 사례는 늘어난다. 그러나 청소년 임신 문제은 관련 통계조차 없다. 헤럴드경제는 ‘있지만 없는 것’으로 외면받는 10대 청소년들의 임신과 낙태 실태, 그리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언을 시리즈로 조명한다.  


[헤럴드경제=정세희ㆍ성기윤 기자] “일단 가출부터 해”, “인생 힘들지 않게 살게 해줄게. 그거 하나 약속한다.”

본지 기자는 인터넷에 직접 임신한 고2 여학생인 것처럼 고민 글을 올렸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카카오톡으로 연락해달라고 적었다. 그러자 몇시간 뒤 “미성년자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소개시켜 준다”며 한 20대 남성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임신중절 수술을 위해선 가출을 먼저해야 한다고 했다. 가출 결정을 머뭇대자 그는 “나 믿고 따라올래, 네가 알아서 할래?”라고 했다. 사실상의 협박에 다름 없었다. 다음은 임신한 여고생을 가장한 기자가 그를 만난 ‘실제 상황’이다.

지난 27일 오후 7시께. 경기도 평택의 한 카페에서 가출을 하면 임신중절 수술을 도와주겠다던 20대 남성과 만났다. [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rp.com]

▶능수능란 한 그 “나 세명이나 도와줬어”= 지난 27일 오후 7시께. 경기도 평택의 한 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그를 만났다. 기자는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모자와 마스크로 최대한 얼굴을 가렸다. 검정 코트에 안경을 끼고 나온 그는 불안한 듯 주변을 계속 살폈다.

기자는 카페 테이블에 그를 마주하고 앉았다. 그는 능수능란 했다. 우선 본인이 믿을만한 사람이란 점을 강조했다. 이미 수차례 임신한 청소년의 수술을 도왔다고했다. 미성년자를 수술 해주는 병원도 소개시켜 줄 수 있고, 수술을 위해 성인 여성의 주민등록증을 빌려주거나 보호자로 함께 가줄 수도 있다고 했다. 수술 후 자신의 집에 머물수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3명의 임신한 청소년을 ‘도와줬다’고 했다.

그는 또 “도와주겠다는 99%가 다 나쁜 사람들이야. 성관계만 하고 쫓아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그런 사람들 만나면 너만 손해야.” 기자가 겁 먹은 표정을 짓자 그는 “괜찮아. 내가 너 책임져줄게” 안정시켰다. 그는 임신 여고생의 마음 상태를 읽고 다독인 뒤 해법까지 제시했다. 대신 가출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도 조언했다. 그가 말한 ‘조건’에 대해 기자가 “조건일이 뭘 말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소위 고수익 알바에 대해서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고수익 보장’이라 쓰인 광고를 보이며 “이런 게 다 조건(성매매)인데 여기서 돈 벌어서 병원에 웃돈 쥐어주고 수술을 해. 수술 전에 한번, 수술 후에 수술비로 한번 돈 먹이는 거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연결해줄 수 있는 조건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여기는 듣는 귀가 많아 말해줄 수 없다”고 대답을 피했다.

“나머지는 집 가서 얘기하자”고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이상 그를 자리에 붙잡아 두기가 힘들어진 뒤 취재진은 그에게 신원을 밝혔다. 왜 임신한 여고생을 집으로 유인했느냐고 묻자 그는 “원래 집에 있는 게 맞는데…쫓겨날까봐”라며 횡설수설했다. 미성년자 가출을 유인하고 성매매를 안내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걸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당황한 듯 했지만 당당했다. “당신은 미성년자가 아니잖아요. 카메라 찍은 거 다 지워요.”

현행법상 미성년자를 가출하게 유인하면 약취유인죄다.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제안하는 행위도 성매매 특별법 위반이다. 다행히 그의 이번 대상은 10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법적 책임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진정 학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셨나요?”라고 묻자 그는 도망치듯 나가 자신의 차를 타고 사라졌다. 

취재진이 여고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자 도망가는 모습. [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rp.com]

▶만남 전부터 …절박함 쥐락펴락= ‘고등학생이 임신하는 게 얼마나 힘들지. 나도 내 여자친구가 그런 적 있어서 알아. 그러게 조심하지 그랬어’

오픈채팅방에서 만난 그는 임신한 여고생의 마음을 다독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수술비용, 수술 방법 등에 대해 유창하게 설명했다. 그는 임신한 여고생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돈이 가장 급하네. 너 학교 그만 두는 건 싫잖아. 부모님에게 알리기도 그렇고.”

“네…”

“부모님한테 말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난리 날 것 같아요…욕하시겠죠.”

“뭐 그거야 당연 한거지, 쫓겨나려나?”

“아…” 한숨을 쉬자 그는 본색을 드러냈다. “가출이 답이구만”

결국 임신중절 수술을 위해선 집을 나올 수밖에 없다던 그는 자신만이 유일한 구원자인 듯 말했다. 다른 사람을 따라가면 섬이나 술집에 ‘팔려간다’고 겁을 줬다. “돈을 왜 빌려주겠니? 그걸 미끼 삼아 만나서 어디 좀 가자고 해서 팔아버리는 거지. 너 같은 애들 당하는 거 수십번 봤다. 섬이나 술집에 팔려가지. 그럼 도망도 못가.” 벼랑 끝에선 이에게 누군가가 건넨 ‘도와주겠다’는 말은 달콤했다. 그는 독심술을 하듯 임신한 여고생의 고민을 읽어냈고 심지어 걱정거리들을 직접 해결해준다고 유혹하고 있었다.

“너 관계는 많이 해봤어?” 수술비 걱정을 하는 기자에게 남성은 대뜸 성관계 여부를 물었다. 키와 몸무게도 함께 물어봤다. 그는 30분에 15만원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했다. 이를 ‘조건’이라 칭했다. 이후 이 방법이 얼마나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지 알려줬다. 한달 전 그가 낙태를 도와줬다던 17살 여고생 얘기를 꺼냈다. “걔는 나중에 결국 조건 한다고 집을 나가더라. 30분에 15만원이 생기니까 그걸 알아버리면 못 끊지. 내가 아무리 하지 말래도 뭐…”기자가 관심을 보이자 그는 속삭였다. “왜 너도 하고 싶어? 굳이 숨길 필요 없어. 솔직해져봐.” 이 능수능란함에 누군가는 인생이 달린 고민을 했을 거라는 생각에 기자는 숨이 막혔다.

벼랑 끝에 매달린 여고생의 절박한 마음을 그는 쥐락펴락했다. “그러게 임신하지 않게 조심했어야지” 질책하다가도 “너 하나는 내가 책임질 수 있다”며 안심시켰다. 또 자신의 집에 언니들 두 명이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집 사진과 함께 같이 살고 있다는 여성의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유튜브 바로가기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mwAmB63J1hw)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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