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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리는 내 거”라는 세 아이, 누가 가져야 정의일까

  • 기사입력 2019-04-0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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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한 ‘경제학계 마더 테레사’
완벽한 정의의 본질을 찾기보다
현실에 맞는 실현가능한 정의에 초점

자신만이 피리를 불 수 있다는 아이
다른 장난감 없다며 정당성 외치는 아이
직접 피리 만들어 소유권 주장하는 아이
재치있는 예시로 새로운 정의론 접근


“바로잡을 수 있는 부정의의 존재는 제도적 결점보다는 행위적 일탈과 관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정의는 인간을 둘러싼 제도의 본질 뿐만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생활방식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주된 정의의 이론들 대부분이 ‘정의로운 제도’의 수립 방법에 극도로 골몰하며, 행위적 측면에서는 파생적이고 부차적인 역할만을 부여한다.”(‘정의의 아이디어’에서)

대한민국에 ‘정의’ 열풍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은 이례적인 한국팬들의 성원으로 몇 차례 대중 강연을 했다.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으로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를 제시했는데, 당시 청중들은 그의 정의론 자체 보다 ‘정의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사례와 예시들에 관심이 많았다. 선택지들이 모두 정당성을 갖거나 결함이 있을 수 있는 딜레마에 샌델은 똑 부러진 답변을 내놓진 않았다.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민주적인 토론과정이 중요하다는 점만을 강조했다.

미국에서도 철학책으로는 드물게 인기를 얻은 이 책은 2009년 9월15일 출간됐는데, 보름 뒤, 또 한 권의 정의를 다룬 명저가 나왔다. 바로 아마르티아 센의 ‘정의의 아이디어’이다. 센은 기아와 빈곤문제에 초첨을 맞춘 경제학의 틀을 확립한 공로로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계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후생경제학자다.

정의의 확장을 의미한 듯한 제목을 단 이 책은 완벽한 정의의 본질을 찾기 보다 사회적 현실에 맞는 실현가능한 정의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기존의 정의론과 좀 다르다. 그는 완벽히 공정한 세계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분명히 바로잡을 수 있는 부정의”를 없애는, 현실가능한 정의에 주목했다.

유럽 르네상스 이후 정의론은 두 갈래로 이어져왔다. 홉스, 로크, 루소, 칸트로 이어지는 계약론적 접근법이 내세운 공정한 제도의 규정을 통한 정의의 실현이 한 축을 이룬다면, 다른 한 축, 즉 스미스, 벤담, 마르크스, 밀은 인간의 실제 행위, 사회적 상호작용 및 여러방식의 비교에 관심을 가졌는데, 센은 바로 이 대안적 비교론적 전통에 닿아 있다. 특히 ‘사회선택이론’을 통해 센은 정의의 확장과 부정의를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지 추론한다.

센은 완벽하게 공정한 사회의 유일하고 공평한 해결이라는 선험론적 정의론의 문제점을 ‘세 아이와 하나의 피리’라는 예를 통해 지적한다.

세 아이, 앤과 밥, 칼라는 하나의 피리를 놓고 제가 갖겠다고 나서며 이유를 댄다. 앤은 오로지 자신만이 피리를 불 수 있기 때문에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밥은 자신만이 가난해서 장난감이 없다며 정당성을 주장한다. 칼라는 여러 달에 걸쳐 부지런히 만들어낸 게 자신이기 때문에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아이의 주장과 이유를 모두 듣는다면 결정은 곤란해진다. 밥은 경제평등주의자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칼라는 자유의지론자로부터, 앤은 공리주의적 쾌락주의자의 공감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해결책에는 중요한 논거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를 배제하기 어렵다. 선험적 이론의 한계라는 것이다.


반면 사회선택이론은 관련된 사람들의 가치와 우선 순위에 기초해 사회적 선택지를 상대적으로 고르는 것이다.

센의 현실적 정의론에서 핵심 개념은 역량이다. 센은 한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기능들의 다양한 조합을 역량이라고 부르는데, 실질적 자유이기도 하다.

가령 부유한 사람이 다이어트 목적으로 단식을 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이 굶는 것은 영양 결핍이라는 기능은 같지만 단식을 선택한 유복한 사람의 역량은 빈곤과 결핍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굶는 사람의 역량보다 훨씬 크다. 자유의 기회, 다른 삶을 살기로 선택하는 사람들의 실제적 능력을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빈곤은 단순히 낮은 수준의 소득이 아니라 기본적 역량의 박탈이 된다.

역량 접근법은 낮은 소득 외에도 빈곤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소들도 보여준다. 장애, 연령, 성별, 지역 등에 따라 다르기때문에 빈곤의 양상을 보다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

센은 그렇다고 역량의 평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역량의 평등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과 대립하는 다른 모든 중대한 고려사항들을 꼭 능가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가령, 앞선 예시에서 피리를 두고 다투는 세 아이간의 논쟁의 경우, 피리를 만든 아이의 노력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무시할 수 없고, 그렇지 않을 경우 착취에 해당할 수 있다.

센의 정의에서 민주주의라는 수단은 중요하다. 이를 통해 현실 속에서 정의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선거와 투표라는 공식적인 제도 뿐 아니라 공적 추론, 즉 토론에 의한 통치로서의 민주주의는 결과적으로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정의까지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그의 주된 ‘아이디어’다. 이는 샌델의 공동체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이다.

센의 정의는 인도 및 타 지역의 지성사에서 비롯된 공정, 책임, 의무, 좋음, 바름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포용, 논의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가령 고대 인도의 법학에 등장하는 ‘니티’(niti), ‘니야야’(nyaya)라는 개념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니티는 조직의 적절성 및 행위의 정당성과 관계돼 있는 반면, 니야야는 벌어지는 일과 그 방식, 특히 사람들이 실제로 영위할 수 있는 삶과 관계가 있는데, 센의 새로운 정의론에 영감을 준 듯하다. 법, 철학, 정치, 경제를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그의 지속적인 숙제인 빈곤과 기아, 불평등, 복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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