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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아전선 전우가 된 남편…최전선엔 항상 아내…”
‘제로’ 출산율 해법 어디에…
출산 경험 5명 이야기 재구성
아이 커가며 더 커진 육아문제
경력단절·독박육아 ‘난 어딨지?’
육아전쟁 속 남편 도움 받지만
아이 힘들땐 엄마부터 찾아…


‘출산쇼크’, ‘인구절벽’에 이어 이제는 ‘인구 재앙’이다. 통계청이 28일 내놓은 장래인구특별추계의 저위 추계 시나리오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총인구는 5165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년부터 0.02%(1만명) 감소한다. 2017년 35만명이던 출생아 수는 올해 31만명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올해 1월 출생아 수는 3만300명이다. 전년 대비 6.2% 줄었다. ▶관련기사 3면

“맨 정신으로 이야기하라고요? 시간 많으세요?” 출산 경험 여성들에게 임신과 출산, 육아 이야기를 해달라 했을 때 돌아온 대답들이다. “눈물없이 들을 수 없다”는 이들의 이야기는 구전동화처럼 다음 세대들에 전해진다. 2019년 현재, 한국에서의 출산과 육아는 길을 잃고 있다. 아이 키우기는 어렵고 제도 뒷받침은 없다. 저출산 정책을 만드는 상위 1% 엘리트들은 잘 모르는, 살아있는 이야기를 해보겠다. 출산 경험자 5명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 스물아홉, 내가 가장 잘 나가던 2010년에 아이는 아무런 준비 없이 찾아왔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전성기를 보낼 때였다. ‘일은 어쩌지….’ 아이는 축복이라 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당장 입덧이 시작되고 두통까지 심해졌다. 숨 쉬기도 싫어지는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토록 좋아하던 일도 싫어졌다. 이 감정을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누구나 애 낳는데 왜 유난떠느냐고? 누구나 겪는다고 해서 그 고통이 하찮은 건 아니었다.

출산의 고통은 끔찍했다. 하지만 육아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잠을 못자는 게 사람의 몸을 얼마나 망치는지 겪어보지 않았을 땐 몰랐다. 임신 초기부터 2년간 2시간씩 자다깨고를 반복했다. 안그래도 임신 직후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는데 이를 회복할 시간조차 나지 않았다. 피부는 수시로 뒤집혔고 다크서클에 탈모는 기본이었다. 당장 잠을 못자니 짜증부터 치솟았다. 20대 내내 운동하며 가꾼 탄력은 완전히 사라졌다. 처진 뱃살만큼 망가진 일상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두살무렵,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지만 망설여졌다. 뉴스를 틀 때마다 나오는 어린이집 사건들. 결국 이왕 직장까지 그만둔거 아이가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진 내 손으로 키워보자 마음을 먹었다.

아이는 남편과의 관계도 변화시켰다. 사랑해서 결혼한 우리가 이젠 전쟁을 같이 치르는 전우가 되었다. 겨우 잠든 아이가 깰까봐 우리는 밤에 ‘카톡’으로 대화했다.

‘여보 내일 어린이집에서 간담회가 열린대. 12시까지 오면 돼.’

‘그래. 알겠어. 회사 끝나자마자 갈게. 사랑해’

이 육아전쟁에서 남편보다는 내가 더 자주 최전선에 있었다. 아이는 행복할 땐 아빠를 찾아도 힘들 땐 귀신같이 엄마부터 찾았다. 남편은 당장 전쟁터에서 보이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은 아이가 클수록 집에 늦게 들어왔다. 전쟁 물자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남편은 눈에 불을 켜고 돈을 벌었다. 그 책임감을 모를리 없지만 육아로 지칠 때는 남편도 적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왜 당신은 내가 힘들 때 옆에 없는 거야?”남편이 집에 오자마자눈물부터 쏟아졌다.

“나는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이 고생을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루종일 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은 좌절했다.

“내가 돈 가져오라고 그랬어? 그냥 내 옆에 있어 달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다가 서로 소리가 커지면 아이는 깬다. 그때부터는 아이도 울고 나도 울고 남편도 운다.

서른 다섯. 아이가 조금 크니 다시 일 할 용기가 났다. 일을 하니 확실히 숨통이 트였다. 다시 사람답게 사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먹였다. “엄마. 나 맨날 교실에 혼자 남아있어. 다른 애들 엄마가 데리러 올 때마다 슬퍼. 우리 엄마는 언제 오나 너무 슬퍼.”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5시에 퇴근해서 제일 일찍 오는 게 6시였다. 그 사이 유치원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러 올 때마다 아이들을 더 작은 교실로 옮긴다든지 하며 은근히 눈치를 주는 듯했다.

순식간에 나는 죄인이 됐다. 다시 일을 그만뒀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니 내 삶이 좀 달라졌느냐. 유치원보다 초등학교가 더 일찍 끝난다. 오후 1시면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온다. 학원 뺑뺑이를 시키지 않는 한 다시 또 누군가는 아이를 봐야 한다. 나는 또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학원은 몇 개를 보내하지, 국영수에 매몰되지 않은 아이를 키우고 싶은데….

이 전쟁통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아이가 흥얼거리면서 그림을 그릴 때, 그 천사의 목소리가 마음을 어루만진다. “엄마 사랑해” 놀이터에서 뛰어 놀다가 내게 안기면 어떤 역경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행복으로 일단 애를 낳고 나면 부모는 어떻게든 키운다는 걸, 정부는 영리하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만약 내 딸이 “엄마 나 결혼하기 싫어”라고 한다면 나는 말리지 않을 거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너무나도 크지만 그 행복을 강요하기엔 버려야 할 게 너무 많았다는 걸, 나는 알아버렸다. 아이를 대학까지 보내고 나면 내 삶을 찾을 수 있을까, 여성으로서 살 수 있을까. 엄마로서가 아닌 ‘나’로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열심히 답을 찾고 있을 때,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온다. 그리고 “엄마”부터 찾는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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