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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이사람 - 이인재 변호사] “의료소송은 ‘기울어진 운동장’…최악 화해가 최상 판결보다 낫죠”

의료사고에서 피해자가 병원과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어렵다. 의료진의 과실인정이나 사과, 보상이 이뤄지는 일도 드물다. 의료소송 전문가로 주목받고 있는 법무법인 우성의 이인재(46·사법연수원 31기) 변호사가 환자 편에 서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병원에서 의료소송에서 10연승을 했다고 회식을 하는데, 피고가 잘 방어해서가 아니고 원고 측이 제대로 입증을 못해서 패소한 것일 수도 있었죠.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우물을 파게 된 건 사법연수원생 시절 아내가 유산을 한 경험이 계기였다. 진료한 병원 원장이 의료법을 전공해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바로 환자 측에 선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1세대 의료전문 변호사로 꼽히는 신현호 변호사 밑에서 병원 측을 대리하다 2005년 개업하면서 환자들을 위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실은 냉혹했다.

“대개 의료사고가 수술방이나 중환자실에서 벌어지는데, 환자가 어떤 이유로 사망하거나 중상에 이르게 됐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길이 없어요.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죠.”

이 변호사가 맡은 대표적인 사건은 2008년 승소판결이 내려진 ‘종아리근육 퇴축술 사건’이다. 한 성형외과에서 종아리가 날씬해지는 수술을 했고, 통증과 종아리 함몰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이 변호사는 진단서를 받아온 27명을 대리해 1인당 400만~500만 원씩 모두 1억 3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받아냈다. “힘든 게 많았어요. 피해자별로 호소하는 부작용, 수술 전후 의사로부터 들은 설명 내용이 다 달랐죠. 더구나 성형 부작용은 배상금액이 많지 않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없어요.”

의료소송 전문가이지만, 그는 오히려 재판보다 조정을 권한다. “최악의 화해가 최상의 판결보다 낫다는 말이 있어요. 소비자원이나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나서서 적정금액을 책정해줄 때도 있는데 당초 제시된 금액에서 20~30%인 경우가 많아요. 강제력이 없는 기관이고, 병원이 받아들일 수 없는 보상규모를 제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보통 보험회사들이 자체적으로 배상금액을 추산하고 판례 데이터를 분석해 승소 가능성을 따지죠. 정보싸움에서도 환자들이 불리하니까 합의를 하는 게 제일 좋아요.”

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소비자원은 의료사고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조정을 해줄 수 있는 기관이다. 다만 중재원은 의료진 측의 동의가 없으면 진정안이 각하된다. 조정이 자동개시되는 건 환자가 사망, 의식불명, 또는 1급 이상의 중증장애를 판정받았을 때에 국한된다. 소비자원은 이와 상관없이 신청이 들어오면 조정절차에 착수한다. “소비자원은 병원이 조정을 불복하면 환자가 소송에 나설 수 있도록 변호사 선임비용을 지원해주고 있어요. 중재원은 소비자원에 비해 인적·물적 인프라가 화려한데, 서로의 장점을 개선해서 견제할 수 있는 구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 변호사는 시민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대표를 맡고 있다. 멘토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다보니 올해 대한변호사협회가 꼽은 우수변호사로 선정됐다. “젊은 변호사들에게 자기 하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나 소명의식을 가지라고 얘기를 해요. 문제점을 보고 입법제안도 하면서 사회가 좀 더 건전해지고 투명해지는 것 같아요.”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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