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상속으로-신율 명지대 교수] 북한 ‘대충의 비핵화’와 미국 ‘완전한 비핵화’
“북한이 우리가 원하는 완벽한 비핵화를 아직 해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비핵화의 정의도 다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북회담 결렬 이후 기자회견장에서 한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다. 바로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를 원하고 있지만, 북한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이름으로 ‘대충의 비핵화’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대충의 비핵화’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북한의 주장처럼 설령 영변 핵시설을 완전히 폐쇄한다 하더라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북한의 미래 핵 역량의 30%~60%만을 폐기한 셈이 되고, 과거 핵은 그대로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과거 핵은 언급조차 안하기 때문에, 북한은 ‘대충의 비핵화’를 통해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추론할 수 밖에 없다.

미국과 북한이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했다는 것은 ‘제재 완화’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이 전면적 제재 완화를 주장했다고 하고 있지만, 북한은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그중에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는 주장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제재 항목이란 대부분 석탄과 철 석유의 수입 수출 중단에 관한 것들이다. 얼핏 들으면 11개 제재 중에 5개의 제재만을 해제하라는 것이어서 북한의 주장이 맞는 것도 같게 들리지만 자세히 보면 이런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주장처럼 대북 제재가 특정 항목만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몇가지 핵심 제재를 풀면 결국 대북 제재 전체가 무력화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석유나 석탄에 대한 제재 해제 문제가 민수용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 역시 지극히 박약하기 때문이다. 즉, 북한의 특수성에 비추어볼 때 민수용과 군사용으로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미북정상회담의 결렬로 미북 간의 인식 차이들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런 미북 간의 동상이몽은 지금까지의 미북 관계가 생각만큼 계획적이거나 치밀한 분석 하에 이뤄진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이것이 바로 톱다운 방식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런 동상이몽은 결국 미국과 북한이 각각 현재 상황을 ‘자기 중심적’으로 바라보며 해석하고, 이를 기초로 상대를 ‘주관적으로 파악’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래 가지고는 합의에 다다른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에 입각한 우리의 중재 역할이다. 양측 사이에서 중재한다는 것은 양쪽을 오가며 상대방의 의중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북이 사용하는 ‘같지만 다른 의미’의 용어를 상대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것을 보면 우리가 이런 중재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용어 정의부터 다시 필요하다”는 말은 그동안 우리 정부의 중재 역할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새삼 질문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다시 중재역할을 자임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지금은 차분히 과거의 중재역할을 돌아보며 중재에 필수적인 객관성을 잘 유지했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중재를 한다는 것은 양측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역지사지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객관성을 잃어 한쪽에 치우친 사고를 하게 된다면 나머지 한쪽의 신뢰를 잃게 되고, 한쪽으로부터의 신뢰를 잃게 되면 제대로 된 중재는 불가능해진다. 신뢰를 잃어 중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워지면 양측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도 제대로 얻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중재는 커녕 오히려 고립되기 십상이다. 외교는 주관적 희망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신율 명지대 교수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