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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식으로 바뀐 고종 국장, 100년전의 기록
고종 황제 국장 사진첩 [사진제공=문화재청]

고궁박물관 ‘100년 전, 고종황제의 국장’전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일본인은 적신 한상학을 시켜 식혜에 독을 타서 드리게 했다. 얼마 안되어 독이 온 몸에 퍼지니 황제가 소리치기를 “내가 무엇을 먹었기에 이러하냐” 하더니 잠시 후 붕어하자, 두 눈은 붉고 온몸에는 붉은 반점이 생기며 부패해 갔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두 시녀도 갑작스레 죽고 말았다”(박은식, 한국독립운동지혈사)

고종 황제의 죽음과 그 장례 과정을 살펴보는 전시가 열린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지병목)은 3ㆍ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3월 한 달간 국립고궁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100년 전, 고종황제의 국장’전을 개최한다.

1919년 1월 21일 고종 황제는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했다. 승하 직후 고종이 독살됐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고, 나라를 잃고 억눌려 왔던 사람들의 울분이 터지며 전국적으로 3ㆍ1운동이 확산되는 기폭제가 됐다.

전시는 ‘고종의 승하’, ‘고종의 국장’, ‘고종의 영면’등 3개 주제로 구성됐다. 당시 사진과 의궤 등에 남겨진 기록, 홍릉의 사진 등 15건의 작품이 소개된다. 일제강점기 2등 국가였던 조선의 황실이 처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고종 황제의 국장은 여러가지 면에서 이전 조선 국왕의 국장과 달랐다. 승하 후 발인까지 보통 5개월이 소요됐으나, 고종의 경우는고작 40일이란 시간만 걸렸다. 빈전에서의 제사도 매일 아침 저녁, 초하루와 보름에 이뤄졌으나 고종은 사망 후 10일제, 20일제, 50일제를 지냈다. 빈전의 양식도 일본 황실의 양식이 적용됐다. 
고종 황제 국장 사진첩 [사진제공=문화재청]

가장 큰 차이는 국장 행렬이었다. 왕의 관을 실은 ‘대여’ 행렬과 황의 혼백을 상징하는 신주를 모신 ‘신연’ 행렬이 나란히 가는 대신, 일본식 의식인 ‘국장식’이 끼어들면서 두 행렬이 나눠졌다. 대여 행렬은 국장식을 치르러 덕수궁에서 훈련원으로 이동하고, 신연 행렬은 종로를 지나 흥인지문으로 향했다. 신연 행렬은 흥인지문 밖에서 대여행렬이 국장식을 마치길 기다렸다. 두 행렬이 만나 남양주의 홍릉까지 이동했다.

전시엔 고종 황제의 승하 당시 제작된 어보(御寶)와 옥책(玉冊)도 나왔다. 여전히 남아 있던 당시 왕실 의례의 면모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한편, 3월 21일 오후 2시에는 이번 전시와 연계한 특별 학술강연회가 ‘고종 국장과 1919년의 사회’라는 주제로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다.

박물관측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이번 전시와 연계 학술강연이 억압에 항거하는 우리 민족의 기념비적 항쟁인 3.1운동의 의미를 되돌아보면서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 온 역사의 흐름을 상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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