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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책상위 국어사전은 어디로 갔나
집안의 가구 하나를 빼거나 바꾸는 건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다. 일단 손을 대면 대청소로 번지게 마련인 데다, 가구 처리도 골치 아프다. 새로 바꾸기라도 하면 업체가 헌 것을 가져간다지만 아예 버릴 경우 구청에서 발급하는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붙여야는데 번거로워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그런 밀린 숙제 중 하나가 아이방의 침대였다. 얼마전, 엄두가 나지 않던 이 일을 어쩌다 식구들이 매달리게 됐다. 침대에 기댄 책과 이곳 저곳 쌓인 물건들에 한숨이 나왔지만 침대 시트를 걷어치우는 순간, 일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매트리스를 걷어내고 나사를 풀어 분해하자 찜찜했던 침대 밑이 드러났다. 언제 썼는지도 모를 삼각자와 메모지, 리시버, 볼펜, 문고책 등에 섞여 눈에 띈 게 ‘동아 새국어사전’이었다. 얇은 종이 끝이 돌돌 말려들어가 애써 펴곤 했던 30년이 된 사전이 거기에 쳐박혀 있었다. 어디 있었는지 찾지도 않았을 만큼 잊고 지낸 시간이다. 문제는 사전을 버릴 것이냐 말 것이냐였다. 이미 새 사전이 두어 권 있는데다, 요즘 누가 종이 사전을 찾느냐는 의견과 손때 묻은 사전에 대한 미련 사이에서 왔다갔다했다.

종이사전은 전자사전에 밀려 쓸모를 다한 것처럼 보이지만 꽤 오랫동안 인기있는 졸업선물이자, 스테디셀러였다.

사실 우리는 1920년대까지도 사전을 갖지 못했다.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은 영화 ‘말모이’의 소재가 된 순수민간단체인 조선어학회가 편찬한 ‘조선말큰사전’이다. 일제가 우리 말과 글을 없애기 위해 광적으로 집착할 때 죽을 힘을 다해 우리 말을 모아 만든 사전이다. 국가지정기록물 제4호로 지정된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는 1929년부터 1942년까지 13년동안 작성됐다. 원고지로는 2만6500장,총 17권으로 구성됐는데, 12권은 한글학회에 소장돼 있고, 나머지 5권은 독립기념관에 기증, 보관돼 있다.

조선말 큰사전편찬 작업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1911년 주시경 선생이 사전 편찬을 위해 말모이 작업을 하다 3년 뒤 타계해 중단된 게 비극의 시작이다. 남겨진 원고는 여러 단체를 거쳐 조선어사전편찬회로, 이후 1936년 조선어학회로 원고가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1942년 초판 인쇄를 앞두고 회원33인이 검거되는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생, 원고는 압수, 실종된다. 그렇게 물거품이 된 사전편찬은 해방 이후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면서 다시 작업에 들어가 1947년 1권이 빛을 보게 된다. 이후 이승만 정권의 한글간소화정책, 6.25전쟁으로 원고는 땅에 묻히는 신세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록펠러 재단의 원조로 1957년 한글날 마지막 6권이 나오게 된다.

사전편찬의 의미는,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라는 조선어학회 대표였던 이극로의 말 속에 들어있다.

말은 매 순간 새로 태어나고 또 사라진다. 쓰지 않는 말은 죽은 말이나 다름없다. 오늘도 많은 말이 사라지고 있지만 전자사전으로는 알 길이 없다. 전자사전은 찾는 말을 넣어야만 그 말 뜻을 알려줄 따름이다. 그 속에선 말의 일생과 역사, 생태계가 보이지 않는다. 종이 사전은 단어와 그 이웃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새로운 말을 모으는 것 못지않게 얼이 담긴 말을 지키는 일 역시 중요하다.

이윤미 라이프스타일섹션 에디터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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