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미국과 중국이 다음달 1일 보복관세 유예 종료일을 앞두고 치열한 막판 수싸움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한국의 최대 효자 수출 상품인 반도체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국이 미국의 통상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산 반도체의 수입을 늘릴 경우 한국의 반도체 수출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4일 국제금융센터는 미국의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이 향후 6년간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반도체를 구매하겠다고 제안했다는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를 인용하며 이같이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이 현재 연간 70억달러 수준인 미국산 반도체의 수입을 2025년까지 330억달러로 늘려 6년간 2000억달러 어치를 수입하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국가별 반도체 수입 비중을 보면 지난해를 기준으로 한국이 28.7%로 가장 높고, 이어 대만이 21.0%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은 5.3%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산 반도체 수입 비중은 2.3%에 머물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수입선 전환이 이뤄질 경우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 지역의 반도체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최근의 반도체 단가 하락과 재고 증가 등에 반영된 과잉공급 상태를 감안할 때 반도체 생산업자에 단기적으로 피해가 불가피하며, 근본적으로 미중의 독점적 구매계약의 파급효과가 보다 광범위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입처 전환이 메모리와 프로세서 칩(processor chip)에 집중될 경우 한국과 대만의 대중 수출에 타격이 예상되며, 외주반도체패키지테스트(OSAT)를 수행하는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등에도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다고 골드만삭스는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다만 미국이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 심화를 꺼릴 수 있고, 자본집약적 산업의 특성상 단기적으로 수출을 늘리기 위한 설비확장이 어려운 측면도 존재해 협상 결과를 보다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우리나라의 수출은 반도체 단가 하락과 대(對)중국 수출 부진 등으로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 연속 감소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이달 1~20일 수출은 233억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1.7% 줄었고, 조업일수를 고려한 수출액도 8.2% 감소했다.
이달 1∼20일 수출을 품목별로 보면 반도체가 27.1% 줄어들면서 감소 폭이 가장 컸고, 석유제품(-24.5%), 선박(-7.5%)도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에 무선통신기기(54.6%)와 가전제품(14.1%), 의약품(45.2%) 등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로 보면 최대 수출국인 대중 수출이 13.6% 줄면서 4개월 연속 감소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또 유럽연합(EU, -18.2%), 베트남(-6.2%), 일본(-12.5%) 등으로의 수출도 감소한 반면, 미국(11.3%), 싱가포르(54.0%), 대만(9.1%)으로의 수출은 증가했다.
정부는 반도체 가격의 조정 등에 따라 2월 수출실적이 부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조만간 수출 활력 제고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그동안 관계부처와 각 업종 단체,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수출활력 제고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 한편, 민관합동 수출전략회의, 수출통상대응반회의 등 범부처 수출지원 체계를 가동해왔으나 아직 뚜렷한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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