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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승태 前대법원장 구속] ‘엘리트 판사’서 ‘관료판사’로 추락…사법역사에 씻을수 없는 오점 남겨
한때 ‘법원행정의 달인’ 평가
무리한 ‘입법로비’로 화 자초


2017년 9월 퇴임한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은 24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퇴임 1년 반 만에 ‘관료화 된 판사’가 추락한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경남고-서울대 법대 출신의 양 전 대법원장은 1975년 판사에 임관한 이래 중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법원 내에서도 엘리트 판사로 손꼽혔다. 1999년 서울지법 파산수석부장판사, 이듬해에는 같은 법원 민사수석 부장판사를 맡는 등 재판 실무에서는 민사 분야, 특히 도산법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6년 재임 기간 동안 ‘사법부 관료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양 전 대법원장이 처음 사법행정에 발을 들인 건 1983년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을 맡으면서부터다.

이후 사법연수원 교수,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사법정책연구실장, 대통령 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위원을 거쳐 2003년 법원행정처 차장을 맡으며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불렸다.

특허법원장으로 재임하던 2005년에는 최종영 당시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대법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보수적 성향의 판결로 이명박 정부에 가장 부합하는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됐다.

실제로 그는 2011년 임기를 마친 이후 대형 로펌에 취업하거나 변호사로 사건 수임을 하지 않았고, ‘전관예우’ 논란 없이 퇴임 7개월여 만에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대법원장 취임 초기에는 판사들이 정기 인사 때마다 대거 사표를 내는 문화를 개선하는 ‘평생 법관제’ 안착을 위해 노력했다.

법원장을 맡았던 고위직 판사들이 다시 일선 재판부로 돌아가 정년을 채우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임기 중반 대법원이 소수의 사건에만 집중하는 ‘상고법원’ 도입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법원행정처는 이 제도 도입을 위해 무리하게 정치권을 상대로 입법 로비를 벌였고, 법원 내부에서도 일선 재판부의 업무를 지원해야 할 사법행정조직이 로비창구가 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법원 자체 조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 시기 법원행정처는 청와대는 물론 국회의원들과 구체적 사건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법원의 독립을 지켜줘야 할 양 전 대법원장은 스스로 외풍을 차단하는 역할을 내려놓고 법원행정처를 정치권과 거래를 하는 ‘창구’로 전락시키면서 사법 역사상 첫 구속 전직 대법원장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됐다.

좌영길 기자/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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