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현장에서] 청와대 앞 ‘광장사람들’
지난 16일 오전 6시 청와대 광장 앞. 추웠다. 체감온도 영하 9도. 기온은 15일 오후부터 뚝 떨어져 있었다. 2년여 전, 칼바람에도 수많은 시민이 모여 촛불을 들었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대신 흔적만 남았다. 농성천막 4개, 1인시위 팻말, 플래카드 등등….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다.

메시지는 때론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도 한다. 어제 15일이 딱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이 4대그룹 총수를 포함한 대기업 등 기업인 130여명을 청와대로 부르고 있던 그 시각. 청와대 영빈관이 보이는 분수대 광장에선 용산참사 10주기 기자회견이 열렸다. 영하의 기온에 미세먼지마저 자욱했던 날씨. 20여명이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용산참사 살인진압 철저한 진상규명’ㆍ‘여섯 명이 죽었다. 책임자 처벌’ 등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진상규명 촉구 의견서’라고 쓰인 봉투를 든 할머니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우리가 왜 또 이자리에 서야 합니까”. 목소리는 떨렸다.

10년 전 가족을 잃은 김영덕 씨도 광장에 섰다. “우리 유가족들은 10년의 세월 동안 하루하루 피눈물 흘리지 않은 날이 없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무엇이 밝혀졌나.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한목소리였다. “입으로만 하는 사과는 필요치 않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청한다고도 했다.

2009년 1월, 용산 남일당 철거민 농성 강제진압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졌다. 광장에 선 이들은 그 때가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 참사 10주기를 맞았는데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용산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 활동이 다시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광장의 ‘응답 없는’ 메시지는 용산참사 유가족만 보내는 게 아니었다. 15일 현장에 있던 경찰 관계자는 “오늘 오전에만 4개 단체가 이곳에서 집회 중”이라고 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해고자 원직 복직을 외치며 148일째 천막을 치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유족들도 플래카드를 내걸고 있다. 선친이 강제징용을 당했다는 김인성 씨는 “한국 정부는 50여년 전 일본과 맺은 청구권 협상으로 얻은 피해자 103만여명의 몫을 아직도 제대로 배분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두달 전 문 대통령과의 면담을 신청했지만 아직까지 답신을 못 받은 사람들도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청와대를 통해 ‘비정규직 100인과의 대화’ 자리를 열고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라고 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김혜진 상임활동가는 16일 “작년 11월 청와대 민원실에 공식적으로 면담 요청을 했다”며 “그 직후 청와대에서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보기를 원하는가’라며 확인 연락이 한 번 왔었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에) 장소는 어디여도 상관없다고 했다. 자유롭게 토론하고 싶다고 했다. 가능하면 공개적으로 만나서 비정규직의 고민을 들어주십사 했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그렇지만 2개월 간 아무 소식이 없었다고 했다.

그동안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이 일이 있은 뒤 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용균이가 문 대통령을 만나 비정규직의 현실을 전달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아들의 마지막 소원을 부모 입장에서 반드시 이뤄주기 위해 문 대통령을 꼭 만나고 싶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반응을 보이긴 했다. 지난해 12월 28일 김의겸 대변인을 통해 “고 김용균 님의 모친 등 유족을 만나 위로와 유감의 뜻을 전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유가족들은 문 대통령을 보더라도 단순한 위로나 유감이 아니라 정부의 책임있는 조치가 제시되는 만남이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곳에 대통령이 달려갈 수 없다. 그걸 기자도 잘 안다.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대통령으로서도 어려운 모든 사람을 만나 그들의 눈물을 훔쳐주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들의 목소리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청와대 광장에서 문득 든 생각이다.

factism@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