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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갈 가족 없는데…돈은 무슨”…사람 그리운 ‘용산 노숙촌’의 겨울
“쉼터든 길바닥이든 매한가지…
조금이라도 덜 추운게 소망”


서울 용산역과 전자상가 사이. 행정구역명으론 한강로 3가 40-1034인 이곳 공원엔 노숙인 텐트촌이 있다. 우거진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공원의 연두색 철창문을 열고 들어가면 추위를 피하려 합판과 비닐로 덧대고 기워놓은 텐트 30여개가 즐비하다. 문 밖서 살아온 삶만 10년. 이곳에서 볼 수 있는 허름한 텐트 하나는 노숙인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집 한 채다.

3일 텐트촌을 찾은 자원봉사자 최모(74) 씨는 한파 속에서 텐트를 집삼은 노숙인들을 살피느라 분주했다. 인기척이 없는 텐트를 속속들이 살피던 그는 “겨울 길에서 죽는 노숙자가 한둘이 아니”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최근 한파가 찾아오면서 노숙촌 사정은 더욱 열악해졌다. 노숙인 시설에 들어가지 못해 사람이 남아있는 텐트만 10여개다.

자원봉사자의 인기척이 들리자 아무도 살지 않는 흉가처럼 보였던 텐트에서 속속 사람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교회에서 받은 핫팩 하나로 몸을 녹이던 A(57) 씨는 “받아놓은 계란프라이, 생수마저 꽁꽁 얼었다”며 “숟가락도 들어가질 않을 정도로 딱딱해 먹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없는 건 돈이 아닌 살아갈 이유였다. 한겨울 노숙을 접고 쉼터라도 들어가란 권유도 여러번. A씨는 끝끝내 사양했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 없는데 노숙자 쉼터든 길바닥이든 무슨 상관이냐”는 이유에서다. 그는 “IMF로 실직한 후 일자리를 찾아 상경했지만 사업까지 망했다”며 “가족들에게 돈 보내지 못하게 되니 가족이 가족이 아닌 게 되더라”고 회상했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재기해보려 애써보기도 했지만 안 해본 막도농에 몸이 망가져 이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덧붙였다.

B(58)씨 역시 거리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전선 꾸러미를 잔뜩 주워놨다. 피복을 벗겨 구리선을 채취하면 돈이 되기 때문이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은 시설로 들어갔지만 15명 정도는 이곳에 남아 올 겨울을 버틸 예정이다. 낮엔 용산역에서 몸을 녹이다 새벽 1시 30분께 역사가 폐쇄되면 날이 밝을 때까지 이곳 텐트에서 버텨야 하기에 손난로 살 돈이라도 벌어볼 요량이다.

그는 “88년도 건설현장에서 몸을 다쳐 이 지경이 됐다”며 “한참 일할 때 건국대부터 홍익대, 화동 화력발전소, 보령화력발전소까지 올린 건물이 여러채”라고 했다. 실직 후 이혼한 그에겐 장성한 아들도 있지만 더이상 막노동도 못하는 처지에 짐이 될까 연락하지 못한다.

이곳 노숙촌에 남은 사람들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다. “이젠 어떤 소망도 없다”며 “날이나 덜 추웠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대답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C모(58) 씨는 “아들이 결혼 했는데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처럼말고”라고 덧붙였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온기였다. “춥고 이 떨려서 소주 한병 사와야겠다”던 B 씨는 용산역 인근을 한바퀴 빙 돌아야한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여기 편의점에선 돈을 줘도 물건 안 판다”며 사라졌다. 그는 지난 연말 “사람이 그리워” 인파가 몰리는 보신각에 걸어 갔었다고 했다. 

김유진 기자/kac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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