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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두현의 클래식에 미치다] 인간감정 흔드는 대작 ‘비창’...희열과 절망이 교차되는 차이코프스키 삶을 만난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 예브게니 므라빈스키가 지휘의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5,6번 음반 [사진=안두현]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지만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하고 집중해서 듣게 된 계기가 있었다. 러시아의 전설적인 지휘자로 불리는 예브게니 므라빈스키(1903-1988)의 음반이 세계최고라고 말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과연 어떤 음반인지 궁금해졌다.

1악장, 깊은 심연 속 울림에 몸서리가 쳐졌다. 어둠 속에 고독하게 서있는 한 남자, 그는 격정적인 시대를 슬픔속에서 걷고 있었다. 그러다 남자는 문득 어린 시절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스쳐갔다. 중년이 되어버린 남자는 생각했다. “난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난 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한 순간에 분노와 절규가 자신을 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절벽 끝에 주저앉아 울부짖다가 쓰러졌다. 쓰러진 남자의 눈가에 희미하게 어머니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가 남자를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한다. “내 아들, 사랑하는 내 아들…”

그렇게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을 듣고 1주일 정도 우울증 증세가 왔다. 음악이 준 충격이 어마어마했다. 실제로 한 정신과 의사가 실험한 결과가 있는데, 우울증 환자들에게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을 들려주고 일주일동안 그들의 상태를 관찰했다. 환자들의 우울증 상태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좋은 실험은 아니지만 음악이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그 정도로 크다는 예이기도 하다. 음악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람의 내면을 마구 흔들어 놓기도 한다.

일단 먼저 들려준 1악장의 이야기는 내가 상상한 이야기이다. 연주자들이 곡의 내용을 알 수 없을 때는 작곡가의 인생이나 음악적 어법을 연구하며 그들의 음악을 해석해 나간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그림과 이야기를 상상하는데, 차이코프스키의 인생을 근거로 개인적으로 얻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차이코프스키는 너무나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이었는데 수줍음이 많았다고 한다. 집에 찾아온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면 엄마의 치마폭 뒤로 숨곤 했다. 그만큼 엄마라는 존재는 자신을 지키는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였고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10살에 법률학교에 입학, 원치않는 기숙생활을 하게된다.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찾아온다. 당시 14세, 콜레라 때문이었다. 곁에서 죽음을 지키지 못했던 차이코프스키는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았을게다.

이렇게 그의 인생으로부터 교향곡의 이야기를 유추해봤다. 음악을 어떻게 듣고 어떻게 상상하는가는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작곡가의 인생을 안다면 거대한 교향곡들을 이해하기가 좀 더 쉽다. 의외로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많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공통된 해석으로 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이 영원히 비밀에 싸여있길 바랬다. “이 곡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게 될거야” 우리의 상상력이 더 난무할 수 있도록 차이코프스키가 작은 배려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종합한다면, 차이코프스키 비창 교향곡은 어둡고 쓸쓸한 곡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피해야하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사실 네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마지막 악장이 너무나 슬프게 소멸되듯이 끝난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멋지게 끝나는 것을 생각한다면, 정말 우울한 곡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음악의 힘이 일으키는 결과는 관객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슬프기 때문에 힘든 당신을 위로해주는 곡이 될 수도 있고, 밝은 상태에서 듣는다면 감성적으로 젖어드는 멋진 곡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감정을 흔들어 놓을 대작이라는 것이다. 그 거대한 힘을 느끼고 싶다면, 기꺼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추천한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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