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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료 반대에도 고종은 왜 카메라 앞에 섰을까
‘대한제국시대’ 궁중미술 조명
한국 전통, 中·日·서양 양식 혼재
격변기 사회 분위기 그대로 담겨

국내 최초 ‘대한황제 초상사진’ 공개
신식 군인 등장 종교화 ‘신중도’ 이목


조선 대대로 어진(御眞)은 단 1점만 제작됐다. ‘터럭 한 올 다르지 않게 그대로 그려, 사람의 영혼마저 담는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를 따르며 제례목적으로만 사용됐다.

조상의 영혼이 담긴 그림을 여러개 제작할 수 없었던 건 당연한 일. 그래서 궁중에서 있었던 각종 의례에 참석한 왕의 존재는 어좌로만 표현됐다.

그러나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1대 황제인 고종(高宗)은 사진기 앞에 섰다. 1884년 지운영과 퍼시벌 로웰이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주요각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이 자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데엔 근대독립국가로 세계무대에서 대한제국을 알려야 했던 정치적 이유가 더 컸기 때문이리라. 사진이나 엽서에 나타난 황제와 황실의 모습은 그래서 마음 아프기까지 하다.

대한제국 궁중미술을 조명한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전을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에서 개최한다. 대한제국시대(1897~1910)라 불리는 고종(1852~1919)과 순종(1874~1926)시기 궁중미술을 조명하는 전시다. 그간 대한제국의 미술은 조선시대 우수한 미술전통이 급격히 쇠퇴, 명맥이 끊긴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전시는 당시 궁중미술이 과거 미술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한편 외부의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여 근대미술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음에 초점을 맞춘다.

전시를 담당한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한국의 전통, 중국, 일본, 서양 등 각종 양식이 혼재되서 나타나는 대한제국의 미술은 ‘하이브리티’적 성격을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역사계에서도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대해 ‘빼앗긴 시간’ 혹은 ‘외세에 억압된 시간’으로만 보지 않고, 정치적 혼돈기 근대화가 시작된 격변기로 재평가 하는 움직임과도 맞물린다.

전시는 크게 4개 섹션으로 나뉜다. 1부 ‘제국의 미술’, 2부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 3부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 4부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로서의 화가’로 구성됐다. 특히 1부에선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발생한 미술 변화와 전개가 펼쳐진다.

왕을 상징하는 붉은 용포 대신 황제를 뜻하는황색을 입은 고종의 모습이 변화의 시작이라면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는 전통적 화원화의 기법과 서양화법이 절충된 그림이다. 하이라이트는 불화 ‘신중도(神衆圖)’다. 불법을 수호하는 신, 즉 호법신을 그린 신중도는 장수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대부분 고전에서 언급되는 유명장수들이다. 그러나 1907년 제작된 신중도엔 대한제국 군인이 등장한다. 푸른 상의를 입은 호법신은 군모와 꽃무늬 장식, 어깨 견장에 태극무늬까지 대한제국 군복을 구체적으로 그렸다. 팔에 사람인(人) 형태의 장식은 계급을 나타낸다. 대한제국기 새롭게 출현한 신식 군인의 강력한 힘으로 수호받길 원했던 당시의 바람이 읽힌다. 규율과 법칙에 가장 엄격한 종교화에서도 이같은 변화가 나타날 정도였으니 당시 사회변화의 충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최초 공개되는 ‘대한황제 초상사진’(김규진)도 눈여겨 볼만 하다. 미국 뉴어크미술관에 소장된 이 사진은 미국 철도ㆍ선박 재벌이었던 에드워드 해리먼(1848~1909)이 1905년 대한제국을 방문했다가 고종 황제로부터 하사받았다. 익선관과 황룡포를 착용한 고종은 전통적 배경인 오봉병 대신 일본식 자수 병풍을 배경으로 앉아있는데, 을사보호조약 직전의 정치적 혼란기 전통 상징 체계상에도 와해가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전시는 내년 2월 6일까지 이어지지만 일부 작품은 짧게는 2주 길게는 3달 뒤 철수한다. 전체를 다 감상하려면 서둘러야한다.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카메라 앞에 섰을까를 생각하면 더 깊게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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